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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전쟁] 농심 짜파게티: 왕좌에 먼지가 쌓였다

신라면이 세계로 나간 사이 열라면이 국내 매운맛 빈자리를 채웠듯, 짜파게티가 짜파구리에 기댄 사이 왕좌엔 조금씩 먼지가 쌓이고 있다

Odin Park기자
[라면전쟁] 농심 짜파게티: 왕좌에 먼지가 쌓였다

1984년 3월 19일. 한 봉지에 200원짜리 라면이 출시됐다.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합쳤다는 이름, 짜파게티.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 누적 판매량 94억개. 짜장라면 시장 점유율 80%. 신라면에 이어 국내 라면 전체 2위. 그리고 오스카 4관왕 영화에 등장한 유일한 라면. 숫자로만 보면 짜파게티는 완벽한 왕이다.

그런데 왕좌에 앉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야기

짜파게티의 탄생은 농심의 집착에서 시작됐다. 1970년 농심짜장면을 처음 출시했을 때 시장 반응은 뜨거웠다. 생산라인을 풀가동해도 수요를 맞추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자 유사 제품이 쏟아졌다. 농심은 모방할 수 없는 짜장라면을 만들겠다고 공을 들였다. 연구원들이 전국 짜장면 맛집을 돌아다니며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그 결과물이 짜파게티였다. 이름부터 달랐다. 짜장면이 아니라 짜파게티. 짜장면+스파게티의 합성어였다. 국내 최초로 스프 제조에 '그래뉼 공법'을 도입해 모래처럼 고운 과립 스프를 만들었다. 면과 스프가 균일하게 섞이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출시 직후부터 불티나게 팔렸다. "일요일은 내가 짜파게티 요리사"라는 광고 카피는 주방 일을 거들떠보지 않던 아빠들을 주말 요리사로 만들었다. 경쟁자들도 밀려들었다. 1985년 삼양 짜짜로니를 시작으로 짜스면·모두짜장·짜호띵·짜장박사·일미짜장면이 쏟아졌다. 그러나 모두 짜파게티의 벽을 넘지 못했다. 짜장라면 시장은 출시 이후 40년간 사실상 짜파게티의 독무대였다.

가장 강력한 도전은 2015년 나왔다. 농심이 스스로 내놓은 경쟁자였다. 짜파게티보다 굵은 3mm 면발에 진한 짜장 스프를 앞세운 '짜왕'이 출시 한 달 만에 매출 2위에 올랐다. 짜장라면 열풍이 불면서 오뚜기 진짜장, 팔도 팔도짜장면, 삼양 갓짜장이 연달아 출시됐다. 처음으로 짜파게티의 왕좌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짜왕을 비롯한 경쟁 제품들은 반짝 인기에 그쳤다. 짜장라면 열풍은 오히려 진짬뽕이 촉발한 고급 짬뽕라면 열풍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지금도 짜장라면 시장에서 농심이 81%의 점유율을 쥐고 있고, 오뚜기·삼양·팔도·하림·풀무원 등이 나머지 19%를 놓고 한 자릿수 점유율 싸움을 벌이고 있다. 40년이 지났어도 판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전환점은 2013년이었다. MBC 예능 '아빠! 어디가?'에서 윤후가 짜파구리를 먹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짜파게티와 너구리 판매량이 각각 78%, 20% 급등했다. 농심은 윤민수·김성주 부자를 광고 모델로 캐스팅했다. 그리고 2020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휩쓸었다. 한우 채끝살을 넣은 짜파구리 장면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짜파게티 해외 매출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칠레·바레인·팔라우·수단 등 짜파게티를 팔지 않던 나라에서까지 수입 요청이 들어왔다. 수출국이 70여개국으로 늘었다.

짜파게티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그 순간, 짜파게티가 아니라 짜파구리가 유명해진 것이었다.

맛 평가

짜파게티는 맛있다. 지금도, 여전히. 고소하고 진한 짜장 스프의 풍미는 40년이 지나도 안정적이다. 면발은 적당히 굵고 쫄깃하다. 올리브유가 들어간 유성 스프가 국물 없는 볶음면 특유의 꾸덕한 식감을 만들어낸다. 스프를 넣고 비볐을 때의 그 검고 윤기 있는 색깔은 짜파게티만의 시각적 쾌감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2024년 40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짜파게티 더 블랙을 먹은 뒤 원조 짜파게티를 다시 열면 뭔가 허전하다. 더 블랙이 더 깊고 진한 맛을 구현했기 때문이다. 40년 된 레시피를 업그레이드한 파생 제품이 원조보다 낫다는 건 칭찬인지 비판인지 모호하다.

짜파게티의 진짜 문제는 단독으로 먹을 때다. 짜파구리, 짜계치, 삼겹살 짜파게티처럼 무언가를 더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라면이 됐다. 레시피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건 장점이지만,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총평

짜파게티는 40년 동안 왕좌를 빼앗긴 적 없는 짜장라면의 제왕이다. 그리고 그 왕좌에 너무 오래 앉아 있었다. 기생충 덕분에 전 세계가 짜파게티를 알게 됐지만, 사실 세계가 알게 된 건 짜파구리였다. 짜파게티 혼자서 만들어낸 신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40년간 경쟁자들이 도전장을 내밀 때마다 짜파게티는 버텼다. 짜짜로니도, 짜왕도, 진짜장도 결국 왕좌를 넘보다 물러났다. 그런데 경쟁자가 없어서 지킨 왕좌와 경쟁자를 이기며 지킨 왕좌는 다르다. 도전이 없는 왕좌에는 먼지가 쌓인다.

맛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왕좌의 먼지를 털어낼 무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 (3.0/5.0)

한줄평
"40년 왕좌의 무게는 묵직하다. 그러나 그 무게가 짜파게티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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