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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스테이블코인 '판게아', 글로벌 금융 판도 바꾸나

한국과 유럽연합(EU) 주요 은행 10곳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판게아(Pangea)'가 공식 출범했다. 2026년 7월, 킥오프 미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 단계에 돌입한 이 프로젝트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국제 표준을 선점하려는 한국과 EU의 전략적…

Odin Park기자
한-EU 스테이블코인 '판게아', 글로벌 금융 판도 바꾸나

한국과 유럽연합(EU) 주요 은행 10곳이 참여하는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 '판게아(Pangea)'가 공식 출범했다. 2026년 7월, 킥오프 미팅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운영 단계에 돌입한 이 프로젝트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국제 표준을 선점하려는 한국과 EU의 전략적 협력이라는 점에서 금융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왜 지금, 왜 '스테이블코인'인가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유로 등 법정통화나 실물자산에 가치를 연동한 암호화폐로, 비트코인 같은 투기성 자산과 달리 가격 변동성이 낮아 실용적 결제 수단으로 주목받아 왔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는 2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국가 간 송금 및 무역결제 영역에서의 활용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기존 국제 송금 시스템인 SWIFT는 평균 2~5일의 처리 시간과 거래액의 3~7%에 달하는 수수료로 비판을 받아 왔다.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 처리 시간을 수 분 내로 단축하고 수수료도 1% 미만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판게아 프로젝트는 바로 이 구조적 비효율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판게아 프로젝트의 구조와 참여 주체

'판게아'라는 이름은 과거 하나로 연결되어 있던 초대륙에서 따온 것으로, 분절된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하나의 디지털 레일로 통합하겠다는 상징적 의지를 담고 있다. 참여가 확정된 10개 은행은 한국 측 시중은행과 EU 회원국 주요 금융기관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컨소시엄 형태로 공동 거버넌스 체계를 구성한다.

프로젝트는 크게 세 축으로 운영된다. 첫째, 유로화와 원화에 각각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양 지역 간 실시간 결제를 가능하게 한다. 둘째,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한 무역금융 자동화로 수출입 기업의 금융 접근성을 높인다. 셋째, 각국 중앙은행의 감독 하에 AML(자금세탁방지) 및 KYC(고객 신원 확인) 체계를 블록체인에 내재화해 규제 준수를 담보한다.

EU의 MiCA, 한국의 디지털자산법이 만나는 지점

판게아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규제 환경의 성숙이다. EU는 2024년부터 가상자산시장 규제법(MiCA, 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며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대한 인가 요건과 준비금 보유 의무를 명문화했다. 한국 역시 2025년 디지털자산기본법 시행으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법적 정의와 발행 요건을 갖추기 시작했다.

두 규제 체계의 상호 인정 가능성이 판게아의 핵심 과제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MiCA와 한국 디지털자산법의 규제 철학이 유사한 방향성을 갖고 있어 상호 운용성 확보가 불가능하지 않다"면서도 "준비금 관리 방식, 감독 주체 간 정보 공유 체계 등 세부 기술적 쟁점이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유사 사례와 비교

은행 컨소시엄 기반의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는 판게아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의 'USC(Universal Settlement Coin)' 프로젝트는 JP모건, 바클레이즈 등 다국적 은행이 참여해 2019년부터 개념 검증을 진행했으나 규제 불확실성으로 사실상 중단된 바 있다. JP모건이 독자 개발한 'JPM Coin'은 기관 간 내부 결제에 한정 운용 중이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통화청(MAS) 주도의 '프로젝트 가디언(Project Guardian)'이 DBS은행 등과 함께 토큰화 자산 실험을 진행하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문가들은 판게아가 가디언 모델보다 더 복잡한 다중 통화·다중 관할권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높다고 평가한다.

연세대 금융공학과 한 교수는 "싱가포르-일본 간 실험처럼 단일 통화권 내 실험과 달리, 원화-유로화 간 스테이블코인 연동은 외환 규제와 통화 주권 문제를 동시에 건드린다"며 "정치적 합의와 기술적 설계가 동시에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반 진영의 시각

지지 측은 판게아가 한-EU 무역 기업, 특히 중소 수출기업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EU 무역 규모는 연간 1,200억 달러를 상회하며, 중소기업의 금융 비용 절감과 결제 속도 개선이 수출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논리다.

반면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중앙은행 진영에서는 민간 은행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공급 통제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한다. 또한 사이버 보안 취약성, 스마트 컨트랙트 오류에 따른 대규모 손실 가능성,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 문제도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은행 컨소시엄이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과점할 경우 소비자 선택권이 오히려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향후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판게아 컨소시엄은 2026년 말까지 파일럿 결제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2027년 상반기 실거래 테스트에 돌입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성공 여부는 결국 규제 당국 간 협력의 속도와 깊이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책적으로는 한국 금융당국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체계를 MiCA 수준으로 정비하고, 한국은행과 ECB(유럽중앙은행) 간 정보 공유 협정을 맺는 것이 선결 과제로 꼽힌다. 디지털 금융 패권을 둘러싼 미국, 중국과의 경쟁 구도 속에서 한-EU의 '판게아'가 제3의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그 첫 번째 시험대가 지금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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