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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도 예외 없었다 — AI 패권 시대, 한국이 쥔 세 장의 카드

앞선 기사에서 다룬 페이블 5·미토스 5 차단 사건에는, 사실 정부와 기업 간 갈등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이 차단이 적대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까지 포함한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지정학 리서치 회사 디시전트리의 그레고리 앨런 대표가 …

동맹도 예외 없었다 — AI 패권 시대, 한국이 쥔 세 장의 카드

미국이 AI의 두뇌를 통제할수록, 그 두뇌를 움직일 몸과 그 몸이 세상을 배우는 경험은 동맹국에 의존하게 된다

이 기사의 핵심 3줄

- 미국은 페이블 5·미토스 5 차단에서 동맹국과 적대국을 구분하지 않았다. "동맹 배제는 아니다"라는 해명이 나온 것 자체가, 한국도 일단 차단 대상에 묶였다는 뜻이다. - 다만 한국은 단순한 약자가 아니다. 반도체·전력기기·원전이라는 현재의 지렛대, 제조 현장의 물리 데이터라는 미래의 지렛대,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이라는 지위까지 세 장의 카드를 쥐고 있다. - AI 경쟁의 다음 무대는 텍스트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와 신뢰의 문제다. 그 무대에서 한국의 제조업과 동맹 관계는 위협이 아니라 자산이 될 수 있다.

앞선 기사에서 다룬 페이블 5·미토스 5 차단 사건에는, 사실 정부와 기업 간 갈등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측면이 있다. 이 차단이 적대국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까지 포함한 모든 외국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지정학 리서치 회사 디시전트리의 그레고리 앨런 대표가 굳이 "동맹 배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에 나선 것 자체가, 한국 같은 우방국들이 일단 그 그물에 함께 걸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도체 때와는 다른 결

이 장면은 한국이 익숙하게 겪어온 반도체 수출통제와 비교하면 더 선명해진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기술의 중국 수출을 통제할 때는, 한국·일본·대만 같은 동맹국에는 비교적 빠르게 예외 조항이나 유예 기간이 주어졌다. 동맹과 적대국을 구분하는 절차가 어느 정도 자리 잡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AI 모델 통제는 다르게 작동했다. "실시간으로 누가 외국인인지 식별할 수 없다"는 기술적 이유로, 동맹국 국민과 적대국 국민이 구분 없이 일괄 차단됐다. 이는 두 가지를 동시에 시사한다. 하나는 AI 모델이라는 자산의 통제가 반도체보다 기술적으로 훨씬 어렵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어려움 앞에서 미국이 "일단 다 막고 나중에 푼다"는 더 거친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다. 한국에게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동맹국이라는 지위가 자동으로 예외를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첫 번째 카드 — 모델을 움직일 전기와 반도체

그러나 이 사건을 한국의 무력함으로만 읽는 것은 절반의 그림이다. 미국이 통제하려는 것은 AI의 '두뇌'에 해당하는 모델이다. 그런데 그 두뇌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막대한 연산을 처리할 반도체와, 그 반도체를 돌릴 전력이 필요하다. 이 영역에서 한국은 미국이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HBM과 첨단 D램에서 한국이 빠지면 미국 AI 산업의 연산 능력 자체가 정체된다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사실이다. 여기에 더해, AI 데이터센터의 가장 큰 제약은 전력이라는 점도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 변압기 시장은 지난해 122억 달러에서 2034년까지 257억 달러 규모로 연평균 7.7% 성장할 전망이며, HD현대일렉트릭·LS일렉트릭 같은 한국 전력기기 업체들이 이 수요의 핵심 공급처로 자리 잡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가스터빈·원전 기술 역시 미국이 AI 데이터센터용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중요한 축이다.

이 모든 영역에서 핵심 전제는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이라는 점이다. 미국이 AI 패권 경쟁에서 중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공급처로 분류한 이상, 반도체·전력기기·원전 같은 필수 인프라에서 한국을 대체할 동맹국은 마땅치 않다. 미국이 AI의 두뇌를 아무리 강하게 통제하려 해도, 그 두뇌를 작동시킬 전력과 반도체는 결국 한국에 의존해야 하는 비대칭적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두 번째 카드 — 다음 전장은 텍스트가 아니라 물리적 세계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할 지점이 있다. 지금 미국이 통제하려는 페이블·미토스 같은 모델은 본질적으로 언어와 추론의 영역에서 작동한다. 그런데 AI 경쟁의 다음 단계는 이 추론 능력이 물리적 세계와 만나는 지점, 즉 '피지컬 AI'다. 로봇이 실제로 물건을 옮기고 공장에서 작업하려면 텍스트 데이터가 아니라 실제 동작·센서·물리 환경에서 쌓인 데이터가 필요하다. 이 데이터는 시뮬레이션만으로 충분히 채워지지 않고, 결국 실제 공장과 실제 현장에서 쌓일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위치가 다시 흥미로워진다. 한국은 반도체·자동차·조선·이차전지에서 세계 최상위 제조 현장을 보유한 나라다. 이 공장들이 로봇과 자동화 설비로 전환되는 과정 자체가, 미국 AI 기업들이 갈구하는 막대한 양의 물리적 데이터를 만들어낸다. 아무리 뛰어난 언어 모델을 가져도, 그 모델을 실제 로봇의 손과 발에 이식해 학습시킬 제조 현장이 없으면 피지컬 AI는 진전될 수 없다.

현대차그룹의 행보가 이 흐름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인수, 새만금 9조 원 투자, 위례 'HMG퓨처콤플렉스' 건설로 이어지는 일련의 결정은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자동차는 이미 로봇에 가장 가까운 형태의 대량생산 제조물이고, 그 노하우가 휴머노이드·산업용 로봇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시장이 현대차를 더 이상 순수한 완성차 기업으로만 보지 않고 '제조 역량을 갖춘 AI·로봇 기업'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흐름은 우연이 아니라 이미 미국 AI 업계의 최상위 인사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기도 하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지난 6월 방한에서 LG·현대차를 만나며 "로봇을 만들 때 두뇌 역할을 하는 AI 공장도 함께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로봇의 두뇌(AI 모델)와 몸(제조 인프라)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이 발언은, 미국 AI 기업들이 한국의 제조 역량을 피지컬 AI 데이터의 원천으로 이미 주목하고 있다는 증거다.

세 번째 카드 — 신뢰할 수 있는 실증의 장이라는 지위

앞의 두 카드가 하드웨어와 데이터라는 '물질적 자산'이라면, 세 번째 카드는 조금 다른 층위에 있다. 한국이 민주주의 체제의 동맹국이면서, 동시에 첨단 기술을 실제 사회에서 가장 먼저, 가장 광범위하게 실험해볼 수 있는 나라라는 지위 그 자체다.

페이블 5 차단 사건의 명분을 다시 떠올려보면 이 카드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미국이 가장 두려워한 시나리오는 최상위 모델이 권위주의 국가의 군사·감시 체제로 흘러가 악용되는 것이었다. 즉 미국의 AI 통제는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라는 신뢰의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다. 이 구도에서 한국은 미국 입장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축에 속하는 동맹국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 강력한 지적재산권 보호, 그리고 이미 수십 년간 누적된 군사·기술 동맹 관계가 그 신뢰의 기반이다.

여기에 한국 특유의 조건이 더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모바일·인터넷 인프라, 신기술에 대한 소비자들의 빠른 수용성, 그리고 정부가 신산업 실증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나서는 행정 환경이다. 이는 새로운 AI 서비스나 로봇이 사회에 도입됐을 때 실제로 어떤 문제가 생기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가장 빠르게 검증할 수 있는 조건이다.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자국에서 곧바로 시도하기엔 정치적·사회적 부담이 큰 실험을 한국이라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에서 먼저 진행하고, 그 결과를 가지고 자국 정책 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카드는 앞의 두 카드보다 손에 덜 잡히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지속력이 길다. 반도체 공정이나 제조 설비는 다른 나라가 시간과 자본을 투입하면 따라잡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서 축적해온 관계와 실증 경험'은 그렇게 단기간에 복제되지 않는다.

비대칭적 상호의존이라는 구조

페이블 5 차단 사건과 한국의 지렛대를 함께 놓고 보면 하나의 구조가 드러난다. 미국이 AI의 두뇌, 즉 최상위 언어모델의 접근권을 강하게 통제할수록, 그 두뇌를 작동시킬 전력과 반도체, 그 두뇌가 물리적 세계를 배우게 할 제조 현장, 그리고 그 모든 실험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맹국의 신뢰는 모두 더 깊이 동맹국에 의존하게 된다. 한국은 이 구조에서 하드웨어(반도체·전력), 물리 데이터(제조 현장), 그리고 신뢰(동맹 관계)라는 세 가지 층위에 동시에 끼어 있는 거의 유일한 동맹국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한국이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자체 최상위 AI 모델을 단기간에 개발해 '소버린 AI'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은 현실적으로 거리가 멀다. GPU 확보, 데이터, 최상위 연구 인력 모두 미국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그 격차를 단기간에 메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한국이 가진 진짜 지렛대는 다른 곳에 있다. 모델 그 자체를 따라잡으려 경쟁하기보다, 그 모델이 실제로 작동하고 학습하고 신뢰받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 영역—전력·반도체, 제조 데이터, 동맹으로서의 신뢰—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굳히는 전략이다. 페이블 5가 사흘 만에 차단됐던 것처럼, 모델에 대한 접근권은 미국의 결정 하나로 언제든 끊길 수 있다. 그러나 전력망과 공장, 그 안에 쌓이는 데이터, 그리고 수십 년간 쌓아온 동맹의 신뢰는 그렇게 간단히 대체되지 않는다. 한국이 나아갈 방향은 바로 이 차이에서 시작돼야 한다.

주목할 것: 미국의 차기 AI 행정명령이나 수출통제 조치에 동맹국 차등 적용 조항이 신설되는지 여부. 그리고 현대차·LG의 새만금·위례 투자가 실제 피지컬 AI 데이터 생산으로 이어지는 첫 가시적 성과가 언제 나오는지가, 한국의 '제조 데이터 지렛대'가 구호를 넘어 현실이 되는 시점을 가늠하게 할 것이다.

구분 | 미국이 통제하는 영역 (두뇌) | 한국이 쥔 영역 (몸·경험·신뢰)

자산 형태 | 최상위 언어모델 (Fable 5, Mythos 5 등) | 반도체·전력기기·원전·제조 데이터·동맹 신뢰

통제 용이성 | 접근권 차단이 사흘 만에 가능 | 공급망·신뢰 관계 대체에 수년~수십 년 소요

핵심 사례 | 페이블 5·미토스 5 외국인 차단 | HBM, 변압기, 가스터빈, 현대차 로봇 전환, 한미 기술동맹

전제 조건 | 안보 명분의 일방적 통제 가능 | 중국 배제 공급망·권위주의 배제 신뢰망에서 대체 동맹국 부재

한국의 전략 방향 | 독자 최상위 모델 단기 추격은 비현실적 | 인프라·제조 데이터·동맹 신뢰라는 세 지렛대 동시 극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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