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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본 손 떼는 LG생활건강…북미 전략 대전환

LG생활건강이 북미 시장에서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승부수를 던졌다. 2019년 약 1억 2,500만 달러(한화 약 1,700억 원)를 투자해 인수한 미국 화장품 브랜드 '에이본(Avon Products)'의 북미 사업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Odin Park기자
LG생활건강 LG서울역빌딩 전경.
LG생활건강 LG서울역빌딩 전경.

LG생활건강이 북미 시장에서 사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승부수를 던졌다. 2019년 약 1억 2,500만 달러(한화 약 1,700억 원)를 투자해 인수한 미국 화장품 브랜드 '에이본(Avon Products)'의 북미 사업권을 매각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단순한 자산 처분을 넘어, 방문판매 중심의 올드패션 모델을 폐기하고 리테일·디지털 채널 중심의 새로운 생존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에이본, 왜 짐이 됐나

에이본은 한때 전 세계 100개국 이상에서 600만 명의 방문판매원을 거느리며 '도어투도어(Door-to-Door)' 화장품의 대명사로 군림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급속도로 성장한 이커머스와 뷰티 전문 편집숍(세포라, 울타뷰티 등)의 공세에 직격탄을 맞으며 북미 사업은 지속적인 적자 구조에 빠졌다.

LG생활건강이 에이본 북미 법인을 인수하던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컸다. 방문판매 모델 자체의 구조적 쇠퇴, 에이본 브랜드의 노후화, 젊은 소비자층과의 단절이 이미 명확했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에도 북미 법인은 뚜렷한 실적 개선을 이루지 못했고, LG생활건강의 전체 해외 사업 수익성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실제로 LG생활건강의 북미 부문 매출은 인수 이후 기대치를 지속적으로 밑돌았다. 회사의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사업은 수 년째 영업 손실 또는 미미한 수익에 그치며 그룹 전체 실적의 발목을 잡아왔다. 증권가에서는 에이본 북미 사업의 손상차손 가능성을 꾸준히 경고해왔다.

'방판의 무덤'이 된 미국 시장

에이본의 몰락은 LG생활건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문판매 모델 자체가 미국 시장에서 전방위적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신호다. 미국 직접판매협회(DSA)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 직접판매(방문판매 포함) 시장 규모는 2016년 약 360억 달러를 정점으로 이후 정체 또는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같은 방문판매 기반의 글로벌 뷰티 기업 에이본의 모기업 나투라&코(Natura&Co) 역시 에이본 브랜드 전체 구조조정을 단행 중이며, 메리케이(Mary Kay)도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방문판매라는 유통 모델 자체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와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유통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 소비자, 특히 MZ세대는 제품을 SNS에서 발견하고, 리뷰를 확인한 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편집숍에서 즉시 구매하는 방식에 익숙하다"며 "낯선 사람이 집 앞에 와서 제품을 소개하는 모델은 이미 문화적으로도 맞지 않는 시대"라고 지적한다.

LG생활건강의 새 북미 청사진: 리테일과 디지털

에이본을 덜어낸 LG생활건강이 택한 대안은 명확하다. 자사 프리미엄 K-뷰티 브랜드를 미국의 주류 리테일 채널과 디지털 플랫폼에 직접 올려놓는 것이다.

LG생활건강은 이미 '더 히스토리 오브 후(The History of Whoo)', '숨37°', '오휘(OHUI)' 등 럭셔리·프리미엄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후'는 중국 시장에서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K-뷰티 프리미엄 포지셔닝을 증명한 브랜드다. 문제는 이를 미국의 세포라(Sephora), 울타뷰티(Ulta Beauty), 아마존(Amazon) 등 핵심 채널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디지털 전략도 병행된다. 틱톡샵(TikTok Shop)을 통한 라이브커머스, 인플루언서 마케팅, D2C(소비자 직접 판매) 플랫폼 강화가 핵심 축이다. 실제로 미국 뷰티 시장에서 틱톡 기반 바이럴을 통해 단기간에 급성장한 브랜드들의 사례는 K-뷰티 기업들에게 유의미한 선례가 되고 있다.

글로벌 M&A 실패 교훈…선택과 집중의 시대

이번 에이본 매각은 LG생활건강의 해외 M&A 전략 전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기도 하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에이본 외에도 2010년대 후반부터 일본 긴자스테파니, 뉴질랜드 에버라이프 등 해외 기업들을 연달아 인수하며 외형 확장에 나섰다. 그러나 이들 상당수가 기대했던 시너지를 내지 못하면서 M&A 주도 성장 전략의 한계가 드러났다.

글로벌 뷰티 업계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관찰된다. 코티(Coty)는 방문판매 기반 브랜드를 정리하고 럭셔리·프레스티지 포트폴리오를 강화했고, 에스티로더(Estée Lauder)도 수익성이 낮은 브랜드를 매각하며 프리미엄 집중 전략을 가속화했다. 글로벌 뷰티 M&A 흐름이 '규모의 확장'에서 '포트폴리오 최적화'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뷰티 산업 애널리스트들은 "2010년대의 공격적 인수합병 시대는 끝났다"며 "지금은 어떤 브랜드를, 어떤 채널에, 어떤 소비자에게 파느냐가 승부를 가르는 시대"라고 분석한다.

K-뷰티의 미국 공략, 구조적 기회는 유효하다

에이본 매각이 LG생활건강의 북미 사업 철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노후화된 자산을 털어내고 진짜 승부를 걸기 위한 포석으로 읽혀야 한다.

미국 뷰티 시장은 2024년 기준 약 1,000억 달러(한화 약 140조 원) 규모로 세계 최대 단일 시장이다. 그리고 이 시장에서 K-뷰티에 대한 관심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민텔(Mintel)에 따르면 미국 MZ세대 소비자 중 40% 이상이 K-뷰티 제품을 구매하거나 구매 의향이 있다고 응답했다. 스킨케어 루틴 문화, 클렌징 오일, 유리 피부(glass skin) 트렌드 등 K-뷰티가 선도하는 개념들이 미국 주류 뷰티 시장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LG생활건강이 에이본이라는 '20세기 유산'을 정리하고 디지털·리테일 중심의 새로운 판을 짜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는, 결국 브랜드 경쟁력과 현지화 실행력에 달려 있다. 방문판매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관건은 디지털 전쟁터에서 LG생활건강이 K-뷰티의 이름값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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