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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짜리 평화 — 호르무즈가 열렸다는 착각

트럼프는 완벽한 승리라 했다. 그러나 합의문 5조를 읽은 사람들은 시계를 보기 시작했다

Mathew Rio기자
60일짜리 평화 — 호르무즈가 열렸다는 착각

이 기사의 핵심 3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월 17일 종전 양해각서(MOU) 서명 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달성하고자 했던 모든 목표, 그리고 그 이상을 이뤄낸 것이다." 완벽한 승리라는 자평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공개된 합의문 14개 조항을 한 줄씩 읽어 내려간 사람들의 표정은 그만큼 밝지 않았다. 제5조 때문이었다. 이란은 "60일 동안만 아무런 비용 없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상선들의 자유 통항을 보장한다고 적혀 있었다. 평화가 아니라 평화의 체험판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좁은, 가장 비싼 길

호르무즈 해협이 왜 이렇게 중요한지를 이해하려면 숫자 몇 개로 충분하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20%가 이 해협을 지난다. 한국에 한정하면 이야기는 더 극단적이다.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70.7%, LNG의 20.4%가 중동에서 오고, 그중 수입 원유의 95%가 이 해협을 통과하는 구조다. 좁은 해협 하나가 한국 경제 동맥의 굵기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 국제유가는 배럴당 70달러 초반에서 한때 100달러를 훌쩍 넘는 수준까지 치솟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시나리오 분석에 따르면, 설령 조기 종전이 이뤄지더라도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인 63달러로 돌아가지 않고 90달러 안팎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전쟁이 끝나도 비용은 남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나프타 수입 중 중동 비중이 34.4%에 달하는 만큼,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원재료 수급 자체가 이 한 해협의 안정성에 인질로 잡혀 있던 셈이다.

산업계가 보인 두 가지 반응

종전 소식이 전해지자 업계의 반응은 빠르게 갈라졌다. 항공업계는 가장 즉각적인 수혜 업종으로 거론됐다. 유류비는 항공사 영업비용에서 가장 큰 비중—약 30%—을 차지한다. 업계 관계자는 "전쟁 불안감으로 치솟았던 환율이 안정됨으로써 여객 수요 회복과 항공사의 외화비용 부담이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류할증료 인하가 가시화되면 여행 수요 자체가 살아날 여지도 있다.

반면 정유업계의 반응은 한결 신중했다. 업계는 "종전 이후 실제 호르무즈 통항 상황 및 원유·석유제품 시장 향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냈다. 종전 발표와 실제 원유 흐름의 정상화 사이에는 시차가 있고, 그 시차 동안 정유사들의 셈법은 복잡하게 꼬여 있다.

이 신중함의 근거가 바로 제5조다. 60일이라는 시한은 항해 일정과 장기 계약을 다루는 정유업계에 애매한 신호다. 두 달 뒤 통행료가 부과될 수도 있는 항로를 전제로 장기 수송 계약을 다시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항공업계처럼 유가 하락을 곧바로 영업비용 절감으로 연결할 수 있는 업종과, 공급망 전체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업종 사이의 체감 속도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60일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MOU 제5조를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란의 셈법이 보인다. 조항은 통행료 면제가 60일로 한정된다고 명시하면서도, 이란이 오만 및 걸프 연안국들과 협의해 호르무즈 해협의 미래 관리 및 해상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받겠다는 입장까지 못 박아 뒀다. 군사적으로는 밀렸지만 경제적으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실제로 이란 측 협상대표는 "호르무즈, 전�ㅂ 전으로 안 돌아간다"며 60일 뒤 통행료 재부과를 공식화했다.

이 구도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군사적으로 패배한 이란이 경제적으론 승리했다"고 평가했다. 제재 해제, 3,000억 달러 자금 조달 보장, 원유 수출 재개라는 경제적 양보를 미국으로부터 받아낸 대가로, 이란은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핵 문제를 봉합했다. 미국이 요구해온 고농축 우라늄 전량 해외 반출은 합의문에 명시되지 않았다. 결국 최종 합의는 60일의 협상 기간 안에 다시 만들어져야 하는 미완성 과제로 남았다.

시장은 이미 베팅했다, 산업은 아직 셈을 끝내지 않았다

종전 소식에 시장은 안도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 안도감과 산업 현장의 실제 셈법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렸다는 뉴스와, 한국 정유사가 안정적으로 장기 원유 계약을 재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른 이야기다. 60일이라는 시한이 다가올수록, 산업계의 다음 질문은 명확해진다. 8월 중순 그 시한이 만료될 때, 이란은 정말 통행료를 부과할 것인가. 그리고 그 비용은 결국 누구의 청구서에 적힐 것인가.

세계는 전쟁이 끝났다고 환호했다. 그러나 정작 그 평화의 약관을 읽은 이들은, 달력에 8월 중순을 표시해두고 있다.

주목할 것: 8월 중순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면제 시한 만료 시점, 그리고 그 전까지 진행될 60일간의 최종 합의 협상. 합의가 연장되지 않을 경우 정유·석유화학 업계의 원가 부담이 재차 불거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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