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AI 칩 전쟁이 부른 초소형 부품 품귀 사태

손톱 위에 수백 개를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전자 부품 하나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2026년 6월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6년 하반기부터 고사양 특수 MLCC의 구조적 공급 부족이 나타날…

Mathew Rio기자

스마트폰보다 작은 부품이 AI 시대의 새 병목으로

손톱 위에 수백 개를 올려놓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전자 부품 하나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2026년 6월 17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6년 하반기부터 고사양 특수 MLCC의 구조적 공급 부족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Q. MLCC가 뭔가요? 왜 갑자기 주목받나요?

MLCC(Multi-Layer Ceramic Capacitor·적층 세라믹 콘덴서)는 전자기기 안에서 전류의 흐름을 안정시키고 노이즈(잡음)를 걸러주는 아주 작은 부품입니다. 쉽게 말해 전자회로의 '완충재'이자 '필터' 역할을 합니다.

스마트폰 한 대에 약 1,000개, 전기차 한 대에는 1만 개 이상이 들어갑니다. 워낙 흔하게 쓰이다 보니 '쌀(rice)'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평범해 보이는 부품이 최근 AI 인프라 확산과 맞물려 갑자기 '귀한 몸'이 됐습니다.

Q. AI와 MLCC가 무슨 관계인가요?

핵심 키워드는 CSP 인하우스 ASIC입니다.

CSP(Cloud Service Provider)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같은 대형 클라우드 기업을 말합니다. 이들이 최근 엔비디아 GPU에 의존하는 대신 자체 설계 AI 반도체, 즉 ASIC(Application-Specific Integrated Circuit·특정 목적용 집적회로)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구글의 TPU, 아마존의 트레이니엄, 메타의 MTIA가 대표적입니다. 문제는 이 자체 제작 AI 칩들이 기존 범용 칩보다 훨씬 더 높은 사양의 MLCC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고성능 AI 칩은 엄청난 전력을 순간적으로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전압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초고용량·초소형 MLCC가 필수입니다. 일반 가전제품용 MLCC와는 완전히 다른 '특수 등급' 제품입니다.

Q. 왜 부족해지는 건가요? 더 만들면 되지 않나요?

여기서 MLCC 산업의 구조적 특성이 발목을 잡습니다.

고사양 MLCC는 소재, 적층 기술, 소성(고온 처리) 공정 등 모든 단계에서 극도로 정밀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공장을 짓고 양산 체계를 갖추는 데만 최소 2~3년이 걸립니다. 즉, 지금 수요가 폭발해도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기 어렵습니다.

설상가상으로 CSP들이 앞다퉈 비슷한 시기에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서면서 수요가 특정 사양(스펙)으로 집중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트렌드포스는 이를 "스펙 집중화(Specification Concentration)"라고 표현했습니다. 다양한 제품 수요가 고르게 분산되지 않고, 극소수의 고사양 규격에 쏠리면서 공급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뜻입니다.

한국 기업에는 어떤 의미인가요?

삼성전기LG이노텍은 이 흐름의 직접적인 수혜자이자 동시에 도전에 직면한 기업들입니다.

삼성전기는 일본 무라타(Murata), TDK와 함께 세계 MLCC 시장을 삼분하는 최상위 업체입니다. 고사양 MLCC 기술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어, 공급 부족 국면이 현실화될 경우 가격 협상력 강화와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과거 2018년 MLCC 슈퍼사이클(초호황 국면) 당시 삼성전기 주가가 급등했던 사례가 있는 만큼, 이번 AI발 수요 집중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다만 도전 과제도 있습니다. CSP 인하우스 ASIC은 각 기업마다 설계가 다르기 때문에, 고객사별로 맞춤형 사양을 개발해야 하는 부담이 커집니다. 구글용, 아마존용, 메타용이 각각 다른 스펙을 요구할 수 있어 '소품종 대량생산'에서 '다품종 고부가 생산'으로 전략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LG이노텍은 MLCC보다는 기판(반도체 패키지 기판)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 직접적인 수혜 폭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AI 서버 부품 전반에 대한 수요 증가는 FC-BGA(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 기판 등 관련 제품 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있어 간접적인 긍정 효과가 기대됩니다.

이 뉴스가 중요한 이유

2018년 MLCC 품귀 사태는 스마트폰·자동차 수요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수개월 만에 MLCC 가격이 두 배 이상 뛰었고, 일부 전자제품 제조사는 부품을 구하지 못해 생산을 줄여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트리거가 다릅니다. AI 칩 내재화라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흐름이 수요를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트렌드포스가 "구조적 부족"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일시적 수급 불균형이 아닌, 산업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만성적 공급 부족이 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초소형 부품 하나가 AI 패권 경쟁의 숨은 변수가 된 지금, 삼성전기를 비롯한 한국 MLCC 업체들이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향후 수년간의 실적과 글로벌 위상을 가를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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