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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향은 틀렸다

글로벌 팝을 향해 걸어 나왔다. 그런데 자신을 지우며 걸어가는 건 틀렸다

Odin Park기자
그 방향은 틀렸다

aespa《LEMONADE》리뷰

에스파가 선택한 방향은 이해할 수 있다. 데뷔 6년 차, K팝 팬덤 너머 글로벌 팝 씬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 G-DRAGON, Ty Dolla $ign, Becky G와의 협업. 광야와 æ라는 세계관 밖으로 걸어 나오는 시도. 그런데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이 앨범에서 에스파는 어디에 있는가.

《LEMONADE》는 11트랙짜리 협업 모음집처럼 들린다. G-DRAGON이 있고, Ty Dolla $ign이 있고, Becky G가 있다. EDM이 있고, 힙합이 있고, 록이 있고, 하이퍼팝이 있다. 없는 것은 에스파다. 카리나의 날카로운 기운도, 윈터의 폭발적인 보컬도, 지젤의 래핑도, 닝닝의 깊은 음색도 이 앨범에서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4명의 멤버가 11트랙 내내 배경처럼 존재한다. 글로벌 팝 씬으로 나아가려 한 시도가 역설적으로 에스파를 지워버린 것이다.

앨범을 여는 'WDA (Whole Different Animal)'은 가장 강력하다. G-DRAGON이 합류한 힙합 기반 댄스곡으로 묵직한 신스 베이스와 압도적인 훅이 충돌한다. 이 트랙에서만큼은 에스파가 살아있다. G-DRAGON과 맞서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느낌이다. 선공개 당시 기대를 높인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 에너지가 2번 트랙 'LEMONADE'로 이어지지 않는다. 여름을 겨냥한 EDM으로 전환되는 순간, 앨범의 기세가 꺾인다. 앨범의 첫 두 트랙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반부가 앨범의 가장 큰 문제다. 'Shakin''은 거칠고 중독적인 훅이 있지만 4명 중 누구의 곡인지 알 수 없다. 'Can't Help Myself'는 록 사운드로 진정성을 노래했지만 에스파의 목소리가 록 장르와 어색하게 맞닿는다. 'Camouflage'는 하이퍼팝 시도인데 앨범 전체 흐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연속으로 세 곡을 들으면 세 개의 다른 앨범에서 고른 것 같다. 문제는 각 트랙의 완성도가 아니다. 이 곡들이 에스파라는 4명의 개성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Switchblade'는 Ty Dolla $ign과의 협업 트랙으로 앨범에서 가장 자연스럽다. 두 아티스트의 목소리가 균형을 이루고 곡의 완성도도 높다. 그런데 이 트랙이 잘 된 이유를 따져보면, Ty Dolla $ign이 에스파의 색깔에 맞춰 들어왔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협업 트랙들에서는 에스파가 협업 아티스트에 맞춰 자신을 바꾼 느낌이 든다. 방향이 반대다.

'Roll'과 'My Plan'은 앨범 후반부에서 잠깐 숨을 고르게 하는 트랙이지만 인상을 남기기엔 힘이 부족하다. 'Til We Die'는 팬들을 향한 여름 앤섬으로 콘서트 엔딩용으로 설계된 곡이다. "From the first day 'til my last breath / Let's make it real, there's nothing to fear." 진심이 담긴 가사지만 앨범 전반의 혼란스러운 흐름 끝에 오는 감동치고는 너무 갑작스럽다. 마지막 'LEMONADE (feat. Becky G)'는 타이틀곡의 Becky G 피처링 버전으로 디지털 전용 트랙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타이틀곡의 변주로 앨범을 닫는다.

이 앨범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방향의 문제다. 글로벌 팝 씬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면, 에스파만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그 씬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LEMONADE》는 글로벌 팝 씬에 맞추기 위해 에스파를 지웠다. 광야와 세계관이라는 에스파의 언어를 버리고 글로벌 팝의 언어를 빌려왔는데, 빌려온 언어로는 에스파다운 말을 할 수 없었다. 'Supernova'와 'Whiplash'가 강력했던 이유는 에스파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클럽 팝을 정의했기 때문이다. 《LEMONADE》에는 그 정의가 없다.

첫날 84만 장, 써클차트 1위, 빌보드 200 진입, 아이튠즈 19개국 1위. 숫자는 완벽하다. 그러나 숫자가 음악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에스파는 이 앨범으로 글로벌 팝 씬의 문을 두드렸다. 다만 그 문을 두드리는 방법이 틀렸다. 자신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더 선명하게 하는 것이 글로벌 팝 씬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별점 ★★☆☆☆ (2.0/5.0)

한줄평
"G-DRAGON, Ty Dolla $ign, Becky G가 있다. 없는 건 에스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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