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기만으로 모든 것이 이뤄지진 않기에
팬덤이 사준 231만 장, 음악으로 증명하는 건 다음 앨범의 몫이다
내 멋대로 빚어낸 강력한 노스텔지아

《Let's Start Here.》 — Lil Yachty
힙합은 젊은 세대에 끝내 관대하지 않다. Lil Yachty는 힙합 팬들 사이에서 잦은 논란을 일으켰다. OG들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고, 전통 힙합의 문법과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행보는 SoundCloud에서 출발해, 멈블랩으로 커리어 초반부터 아이콘의 자리에 올랐고, 아우라 하나로 Yeezy 쇼 무대를 당당히 장식했다. 그럼에도 일부 힙합 팬들은 그가 힙합 역사에 대한 존중심이 부족하며 무지한 어린 래퍼라고 지적해왔다.
《Let's Start Here.》는 그에게 끝없이 점수를 매기던 장르를 이탈해 영리하게 본인을 증명한 작품이다. 그는 자기가 아이콘이 된 그 링 위에서 싸우기를 그만두고, 아예 다른 링으로 걸어 나간다. 흥미로운 건, 그 이탈이 자기 집을 벗어나지 않은 채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앨범을 세상에 내보낸 레이블은 다름 아닌 Motown과 Quality Control. Migos와 Lil Baby를 키운 트랩의 본거지와, 흑인 대중음악의 유산 그 자체인 이름이 나란히 사이키델릭 록 한 장을 세상에 내민다.
Pink Floyd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몇 년간 품고 다니던 남자가, Patrick Wimberly를 축으로 SadPony와 Justin Raisen, Unknown Mortal Orchestra의 Jacob Portrait, Magdalena Bay와 Jam City까지 불러 모아 6개월을 라이브 밴드에 파묻혔다. 그리고 나온 사운드는 힙합과 사이키델릭 팬들을 모두 만족시킨다. 첫 곡 'the BLACK seminole.'의 드럼 질감은 클래식한 둔탁함을 자랑하고, 그 위를 감싸는 악기들만이 다른 시대의 향수를 건드릴 뿐이다. Motown의 소울과 사이키델릭의 몽환이 겹쳐지는 이 지점에서, Diana Gordon의 보컬은 오페라 혹은 뮤지컬에 비견할 만한 스케일로 곡을 밀어올린다. 그런데도 앨범의 주인 자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표현법과 목소리는 이 낡은 시대의 악기들 한복판에서 가장 클래식하고 가장 '요즘의 것'으로 남는다.
작법 역시 과감하다. 'pRETTy'에서 그는 목소리에 강한 비브라토를 걸어 아예 악기처럼 구사한다. 목소리로 분위기를 짓고 장르의 맛을 더하는 감각이 탁월하다. 여기 얹힌 Fousheé의 가사는 외설적이면서 동시에 솔직하다. 기존 사이키델릭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힙합의 정서'를 가진 가사다. 'the ride-'에서 Teezo Touchdown과 미끄러지듯 넘어가고, Roland풍 에코를 먹인 목소리가 'running out of time'의 관악기 품으로 부드럽게 안기는 그 순간들. 흑인음악과 사이키델릭이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겹쳐지는, 이 앨범만 선사하는 아름다운 지점이다.
이어지는 ':(failure(:'는 힙합 앨범 문법 속 skit에 가깝다. Alex G와 Mac DeMarco가 백보컬로 스며든 스포큰 워드에서조차, 그는 래퍼로서의 페르소나를 숨기지 않는다. 우울과 허무를 읊조리는 사이키델릭의 낡은 문법을 답습할 생각이 애초에 없다. 솔직한 자세로 청자에게 다가서며 실패를 마주하고, 긍정을 전파하는 젊은 래퍼가 있을 뿐이다.
극단적 우울. 사이키델릭이라 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그 정서와 이 앨범은 거리가 멀다. 'THE zone~'에서 묵직한 일렉베이스와 Juno 계열의 신디사이저, 기타가 테마를 잡는 전환부, 허밍으로 채워진 편안한 고음부가 향수를 자극할 때조차, 톤은 밝고도 멜랑콜리하다. 'WE SAW THE SUN!'으로 넘어가서도 기타의 에코와 작위적이지 않은 딜레이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화려한 프로덕션 속 클래식한 악기가 앙상블처럼 휘몰아치는 순간에도 그는 끝내 주인 자리를 놓지 않는다.
'IVE OFFICIALLY LOST ViSiON!!!!'에 이르면 앨범은 대서사시가 된다. 잔잔한 샘플의 질감으로 청자를 안심시킨 뒤 강렬한 보컬이 치고 들어오고, 기타가 테마를 잡는다. 중반부터 등장하는 피아노 위에 얹히는 메시지는 가장 과감한 힙합의 언어로 발화된다. 첫 곡을 다시 듣는 듯한 그 강렬함. 앨범이 여기서 한 번 접히고 다시 펴진다. 완벽한 전환부다.
물론 그 전환부를 지나며 앨범은 눈에 띄게 힘이 빠진다. 'sAy sOMETHINg'과 'sHouLd i B?'가 짧고 가볍게 튀어 오르지만, 전반부의 팽팽하던 긴장은 후반부로 갈수록 헐거워진다. 하지만 낯선 링에 올라, 러닝타임 57분을 끝까지 밀고 나간 그의 실험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태도는 마지막에서 보상받는다. 'REACH THE SUNSHINE.'에서 Daniel Caesar와 함께 앨범을 닫을 때, Yachty는 'the BLACK seminole.'의 테마를 치밀하게 다시 불러온다. 우연이 아니다. 시작한 자리로 정확히 돌아오는 설계. 흩어질 뻔한 14곡이 이 마지막 한 곡에서 하나의 원으로 묶인다. 뛰어난 마감이다. 이 앨범을 통해 Lil Yachty는 래퍼가 아닌 뮤지션으로서의 출사표를 다시 던졌다.
별점 ★★★☆☆ (3.0/5.0)
한줄평
"흑인 음악과 사이키델릭을 넘나드는 일탈이 선사하는 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