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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패션부문, 中 럭셔리 시장 문 두드리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자사 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를 앞세워 중국 럭셔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현지 유통 전문기업 미스토홀딩스(Misto Holdings)와 손잡고 본격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한 이번 행보는,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 한국 컨템포러리 럭셔리 브랜드가 세계…

Odin Park기자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브랜드 ‘준지‘의 베이징 싼리툰 타이쿠리 매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운영하는 브랜드 ‘준지‘의 베이징 싼리툰 타이쿠리 매장.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자사 남성복 브랜드 '준지(JUUN.J)'를 앞세워 중국 럭셔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중국 현지 유통 전문기업 미스토홀딩스(Misto Holdings)와 손잡고 본격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한 이번 행보는,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 한국 컨템포러리 럭셔리 브랜드가 세계 최대 명품 소비 시장에 독자적 포지셔닝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준지, 왜 지금 중국인가

준지는 디자이너 정욱준이 이끄는 아방가르드 남성복 브랜드로, 파리패션위크 정규 일정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패션계에서 독보적인 예술적 정체성을 인정받아왔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2009년 인수한 이후 해외 전개에 속도를 높여왔으나, 중국 시장 직접 공략은 이번이 사실상 첫 본격 시도에 해당한다.

시점 선택은 전략적이다. 중국 럭셔리 시장은 2023~2024년 경기 둔화와 소비 심리 위축으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케링 등 글로벌 명품 그룹이 일제히 중국 매출 감소를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시기는 '틈새'가 열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중국 MZ세대 고소득 소비자들이 과시형 로고 소비에서 벗어나 개성과 예술성을 중시하는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또는 아방가르드 미학으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컨설팅기업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중국 개인 럭셔리 소비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시장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전체의 파이가 흔들리더라도, 특정 니치 세그먼트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스토홀딩스, 어떤 파트너인가

파트너사 미스토홀딩스는 중국 내 셀렉트숍과 럭셔리 멀티브랜드 스토어 운영에 특화된 유통 기업으로, 릭 오웬스(Rick Owens), 메종 마르지엘라(Maison Margiela) 등 아방가르드 성향의 서구 럭셔리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준지의 브랜드 DNA와 타깃 고객층이 정밀하게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유통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파트너십이 갖는 핵심 강점으로 '큐레이션 능력'을 꼽는다. 중국 럭셔리 소비자, 특히 1선·2선 도시의 패션 얼리어답터들은 브랜드의 서사(narrative)와 희소성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미스토홀딩스는 단순 판매망이 아닌,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문화적 맥락을 함께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평가다.

한국 패션의 중국 진출, 명암이 엇갈린 역사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이번 시도는 한국 패션 기업의 중국 진출이라는 더 넓은 맥락에서도 조명할 필요가 있다. 한국 패션 브랜드의 중국 공략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중저가 SPA·캐주얼 브랜드는 2010년대 한류 붐을 타고 빠르게 확장했으나 현지화 실패, 중국 로컬 브랜드의 부상, 사드(THAAD) 갈등 등으로 대부분 철수하거나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이랜드 차이나, LF 등이 쓴맛을 본 대표 사례다.

반면 럭셔리·하이엔드 세그먼트는 사정이 다르다. 지정학적 갈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브랜드 가치와 예술성으로 소비자와 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준지가 택한 이 경로는 리스크는 낮추고 장기적 브랜드 자산 축적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패션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한국 브랜드의 중국 실패는 빠른 볼륨 확장을 노린 전략적 오판에서 비롯됐다"며 "준지처럼 브랜드 희소성을 지키면서 소수의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방식은 전혀 다른 게임"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포트폴리오 전략

이번 준지의 중국 진출은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추진하는 글로벌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 전략의 일환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빈폴, 에잇세컨즈 등 국내 볼륨 브랜드와 함께 준지, 갤럭시 등 프리미엄 라인을 투 트랙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해외 매출 비중 확대를 핵심 중장기 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준지는 이 전략의 선봉대다. 파리, 뉴욕 등 글로벌 패션 도시에서 쌓아온 브랜드 신뢰도를 중국 시장에서 레버리지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이다. 특히 중국 소비자들이 서구 패션위크에서 검증된 브랜드에 높은 신뢰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준지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도전 요인과 변수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럭셔리 시장은 여전히 높은 진입 장벽과 복잡한 규제 환경을 갖추고 있다. 위조품 문제, 플랫폼 의존도, 왕홍(인플루언서) 마케팅 생태계의 변동성도 변수다. 더불어 중국 로컬 럭셔리 브랜드, 이른바 '구오차오(國潮)' 열풍이 자국 소비자들의 애국 소비 심리와 맞물려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외국 브랜드에게는 부담이다.

무엇보다 아방가르드 패션의 고객층은 본질적으로 좁다. 규모의 경제보다 브랜드 순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이 시장에서, 성장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오히려 핵심 과제가 될 수 있다.

시사점: K-럭셔리의 새 방정식

준지의 중국 진출은 한국 패션 산업에 하나의 실험적 모델을 제시한다. 한류 콘텐츠에 편승하지 않고, 글로벌 패션 크리에디빌리티와 현지 전문 파트너십을 결합해 럭셔리 포지셔닝을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는 K-뷰티나 K-팝이 닦아놓은 길과는 결이 다른, 순수하게 패션 자체의 힘으로 승부하는 접근법이다.

성공한다면 이후 한국 컨템포러리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럭셔리 시장에 진입할 때 참조할 수 있는 선례가 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이 이 실험을 어떤 속도와 방식으로 이끌어 가느냐가, 향후 K-럭셔리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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