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닝부터 커튼콜까지, 완벽한 49분
조명이 꺼져도 관객은 자리를 뜨지 않는다. 《OCTANE》은 앨범이 아니라 그가 세운 무대다.
왕가위는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아, 거기에 유통기한을 찍어놓을 뿐이다

《중경삼림》리뷰
경찰 223(카네시로 다케시)은 실연했다. 5월 1일부터 매일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산다. 한 달 후, 통조림 서른 개가 다 차면 사랑도 끝날 거라 믿는다. 마지막 날 밤, 그는 술집에서 금발 가발을 쓴 여자(임청하)를 만난다. 여자는 마약 밀매업자다.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룻밤을 함께 보낸다. 다음 날 여자는 떠난다. 경찰 223은 이제 다른 여자를 사랑하겠다고 다짐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끊어지고 다시 시작된다. 경찰 663(양조위)은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그가 매일 들르는 스낵바의 점원 페이(왕정문)는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바꾸고, 어항 속 물고기를 갈아넣고, 조금씩 그의 삶에 침투한다. 경찰 663은 눈치채지 못한다. 혹은 눈치채고도 모르는 척한다. 두 사람은 결국 스쳐 지나가고, 페이는 스튜어디스가 되어 떠났다가 1년 후 돌아온다.
줄거리로 요약하면 이렇게나 단순한 두 이야기가, 영화로 보면 왜 이렇게 붙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크리스토퍼 도일의 카메라는 홍콩의 좁은 거리와 에스컬레이터, 스낵바의 형광등 불빛 사이를 손으로 잡고 흔드는 것처럼 찍는다. 스텝 프린팅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은 흐려지고, 시간은 뭉개진다. 도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데, 그 안에 있는 두 사람만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왕가위는 이 도시적 속도와 개인의 고립을 같은 프레임 안에 욱여넣는 방식으로, 홍콩이라는 도시 자체를 하나의 감정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영화가 정말 잔인한 지점은, 사랑이 언제나 엇갈린 타이밍에만 존재한다는 걸 태연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경찰 223과 금발 여자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서로를 조금 이해한다. 하지만 그 이해가 찾아온 순간, 이미 헤어질 시간이다. 페이는 경찰 663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의 삶 구석구석을 정리해주면서 사랑을 표현하지만, 정작 그의 눈을 마주 보고 말할 용기는 없다. 그녀가 마침내 돌아왔을 때, 그는 이제 스낵바 사장이 되어 있다. 사랑은 언제나 한 박자씩 늦거나 빠르다. 왕가위는 그 어긋남을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저 삶이 원래 그렇다는 듯, 담담하게 흘려보낸다.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 "5월 1일부터"라는 되뇜,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스낵바에 반복해서 흘러나오는 방식 — 이 영화는 사랑을 서사가 아니라 리듬으로 기억하게 만든다. 왕정문이 통조림 캔을 손에 들고 스낵바를 빙글빙글 돌 때, 페이 웡의 노래가 흐를 때, 관객은 줄거리보다 감각으로 먼저 이 영화를 받아들인다. 그 감각이 남기는 잔상은 이야기가 다 끝난 뒤에도 오래간다.
돌이켜보면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누구도 서로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한다. 경찰 223은 파인애플 통조림을 다 먹어치우고도 여전히 혼자다. 경찰 663은 페이가 자신의 삶을 바꿔놓은 줄도 모른 채 1년을 보낸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슬프기만 하지 않은 건, 그 짧고 어긋난 스침들 하나하나가 인생에서 가장 지독하게 아름다운 한때였다는 걸 영화 스스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완성되지 않아도 된다. 스쳐 지나가는 그 순간 자체가 이미 사랑이었다.
★★★★★ (5.0/5.0)
한줄평
"사랑은 유통기한이 있다. 그래서 더 사무치게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