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공정은 지금, 전공정은 내년 — 반도체 장비주 온도차 해부
HBM 슈퍼사이클의 과실은 장비 업체에도 떨어지고 있다. 다만 수도꼭지가 열리는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 - 반도체 장비주가 일제히 급등했지만 실적은 제각각이다. 후공정 장비는 이미 수주가 살아나고 있고, 전공정 장비는 주가만 먼저 달렸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4일간 서울을 누비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HBM 및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했다. 그가 원한 건 반도체였다. 더 정확히는, 세상 어디에서도 충분히 살 수 없는 반도체였다.
세계에서 가장 바쁜 CEO가 서울 삼겹살집을 찾은 이유
- 젠슨 황이 4일간 서울을 누비며 한국 4대 그룹 총수를 모두 만났다. 공식 의제는 HBM, 진짜 의제는 AI 패권이었다. - 엔비디아는 SK하이닉스를 '최대 파트너'로 치켜세웠지만, 삼성전자를 포기하지 않았다. 둘 다 필요하기 때문이다. - 이번 방한은 한국이 AI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에 있음을 전 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출장이 있다. 하나는 자신이 무언가를 팔러 가는 출장, 다른 하나는 자신이 무언가를 사러 가는 출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의 이번 서울 방문은 명백히 후자였다. 그가 원한 것은 반도체였다. 더 정확히는, 세상 어디에서도 충분히 살 수 없는 반도체였다.
황 CEO는 6월 5일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기자들 앞에서 방한 목적을 스스로 밝혔다. "주된 목적은 공급망 조율"이라고. AI 칩을 '엄청난 양' 만들어야 하는데 그 핵심 부품인 HBM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가총액을 가진 기업의 수장이 직접 공급업체 문을 두드리러 온 셈이다. 구매부서 직원이 납품업체 방문하듯, 다만 전용기를 타고.
황 CEO는 4일간의 일정 동안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세 차례 만났다. 공식 회의실이 아니라 삼겹살집, 치킨집, 냉면집에서였다. 비즈니스 협상을 식탁 위에서 푸는 한국식 방식을 황 CEO가 이미 꿰뚫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식탁에서 오간 이야기의 결론은 공동 기자회견으로 공식화됐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는 차세대 HBM 공동 개발과 장기 기술 파트너십 강화를 선언했다. 황 CEO는 SK하이닉스의 HBM4 샘플을 직접 살펴보며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반도체 패키지를 두고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는 CEO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한 4일 차, 황 CEO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삼성전자였다.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과의 회동 후 전 부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랜 기간 협력해왔는데 오늘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단기적으로는 HBM4와 파운드리, 중장기적으로는 HBM4E·HBM5 공동 개발과 자율주행·AI 칩 생산 협력까지 논의했다고 했다. 황 CEO가 오전에 SK하이닉스를 치켜세우고, 오후에 삼성전자와 '가장 좋은 이야기'를 나눈 것은 모순이 아니다. 엔비디아에게 두 회사는 경쟁자가 아니라, 둘 다 필요한 공급처다.
왜 황 CEO가 직접 서울까지 와야 했는지를 이해하려면 HBM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는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으로, 일반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수십 배 빠르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베라루빈' 한 장에는 수십 개의 HBM 칩이 붙는다.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지구상에 세 곳뿐이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 그리고 미국의 마이크론. 황 CEO가 입국하며 "세 업체 모두 HBM4 퀄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발표한 것은 이 희소한 공급망이 비로소 가동에 들어갔다는 신호였다.
문제는 수요가 공급을 압도적으로 앞지른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주요 빅테크들의 내년 AI 설비투자가 1조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이 결국 HBM을 사는 데 쓰인다. 황 CEO가 "HBM을 대거 사용할 것"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이번 방한에서 덜 주목받았지만 더 중요할 수 있는 대목이 있다. 파운드리 협력이다. 전영현 부회장은 삼성전자가 현재 엔비디아의 자율주행 칩과 그록칩을 4나노·8나노 공정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차세대 공정 협력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삼성 파운드리는 수년간 TSMC에 밀려 고전했다. 수율 문제로 대형 수주를 놓쳤고, 적자를 이어갔다. 그러나 엔비디아라는 세계 최대 팹리스와의 협력이 깊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고객 하나가 사업 전체의 무게중심을 바꿀 수 있다.
물론 낙관만 하기는 이르다. 황 CEO는 SK하이닉스를 "앞으로도 최대 메모리 파트너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망에 안착하려면 말이 아닌 결과가 필요하다. 전 부회장이 "나중에 결과로 보여드리겠다"고 말한 것도 그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엔비디아가 공급망 다변화를 원하는 한, 삼성전자에게 기회의 창은 열려 있다.
황 CEO는 방한 기간 한국의 제조업을 "월드클래스"라 평가하고 한국을 "미국·중국과 함께 AI 선도국 빅3"로 지목했다. 외교적 수사를 감안하더라도 이 발언에는 실질적 의미가 있다. 황 CEO는 삼성·SK뿐 아니라 현대자동차·LG와도 만나 피지컬 AI 협력을 논의했다. 로봇 시대에 필요한 것은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세계 수준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이다. 그리고 그 역량이 집결된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가 한국이라는 것을, 황 CEO는 삼겹살을 먹으며 재확인했다.
황제는 사흘을 머물다 떠났다. 그가 남긴 것은 협약서와 사진 몇 장, 그리고 한국 반도체 주가의 일시적 급등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직접 서울로 왔다는 사실 자체다. AI 공급망에서 한국을 건너뛸 수 없다는 것을, 세계에서 가장 바쁜 CEO의 일정표가 증명했다.
주목할 것: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엔비디아 차세대 공정 수주 여부. 2나노 협력이 가시화될 경우 파운드리 흑자 전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구분 | SK하이닉스 | 삼성전자
HBM 지위 | 엔비디아 최대 파트너 | HBM4 퀄 통과, 공급 개시
파운드리 | 해당 없음 | 4나노·8나노 협력 중
공동 개발 | 다년 기술 파트너십 체결 | HBM4E·HBM5 논의
황 CEO 평가 | "아름답다", "최대 파트너" | "가장 좋은 이야기 나눴다"

HBM 슈퍼사이클의 과실은 장비 업체에도 떨어지고 있다. 다만 수도꼭지가 열리는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 - 반도체 장비주가 일제히 급등했지만 실적은 제각각이다. 후공정 장비는 이미 수주가 살아나고 있고, 전공정 장비는 주가만 먼저 달렸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15일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라 광 인터커넥트 기술이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며, CPO(Co-Packaged Optics)·NPO(Near-Packaged Optics) 시장이 2030년까지 390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로드컴 실적 가이던스 하나에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하루 만에 10% 폭락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와 노무라는 슈퍼사이클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누가 맞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