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척지에서 태어난 AI 밸리
1991년 첫 삽을 뜬 새만금은 33년간 '희망 고문'이라 불렸다. 정의선의 9조 원과 젠슨 황의 한마디가 그 별명을 지웠다
LG전자가 '피지컬AI(Physical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며 로봇 산업 전면에 나섰다. 가전과 전장 부품 사업을 통해 수십 년간 축적해온 모터·액추에이터 기술이 이번 승부수의 핵심 무기로 꼽힌다.

LG전자가 '피지컬AI(Physical AI)'를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내세우며 로봇 산업 전면에 나섰다. 가전과 전장 부품 사업을 통해 수십 년간 축적해온 모터·액추에이터 기술이 이번 승부수의 핵심 무기로 꼽힌다. 글로벌 빅테크와 전통 제조업체들이 뒤섞여 각축전을 벌이는 휴머노이드·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LG전자가 과연 차별적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피지컬AI란 무엇인가
피지컬AI는 디지털 공간에 머물던 인공지능을 물리적 몸체에 결합해 현실 세계에서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로보틱스는 AI의 다음 물결"이라고 선언한 이후,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 피규어AI 등 수십 개 기업이 경쟁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장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3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최대 1,540억 달러(약 2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LG전자가 가진 카드: 모터와 구동계
LG전자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한 AI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하드웨어 역량'에 있다. LG전자는 세탁기·에어컨·청소기 등 가전 제품군에 적용되는 고효율 모터를 자체 설계·생산해왔으며, 전장 사업을 통해 전동화 차량용 구동 모터에서도 상당한 기술 노하우를 축적했다. 로봇의 관절을 구성하는 액추에이터는 본질적으로 정밀 모터와 감속기의 조합이라는 점에서, LG전자의 기존 역량이 로봇 구동계로 직결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로봇 원가 구조에서 구동계(모터·감속기·관절 모듈)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30~40%에 달한다. 소프트웨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하드웨어 내재화 여부가 원가 경쟁력과 납기 안정성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부상한다. 테슬라가 옵티머스의 액추에이터를 100% 자체 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체적 행보: 투자·인수·파트너십
LG전자는 2024년 로보티즈 지분을 취득하고 베어로보틱스에도 투자하는 등 로봇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빙 로봇 '클로이(CLOi)' 시리즈를 통해 상업용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실증 데이터를 쌓아온 것도 강점이다. 클로이는 국내 주요 프랜차이즈와 호텔, 병원 등에 이미 수천 대가 보급돼 실제 운용 환경에서의 신뢰성을 검증받았다.
2025년에는 캐나다 AI 로봇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통해 자율주행 기반 물류 로봇 개발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향후 가전 플랫폼과 로봇을 연동하는 '홈 에코시스템' 전략도 병행 추진 중이다. 냉장고·세탁기·청소기 등 스마트홈 기기와 로봇이 하나의 AI 허브 아래 통합될 경우, 홈 서비스 로봇 시장에서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경쟁 구도와 도전 과제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경쟁 환경은 갈수록 가혹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구글 딥마인드의 RT-2, 오픈AI와 협력하는 피규어AI 등이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 로봇 두뇌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중국 유니트리로보틱스가 저가 전략으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하고 있어 가격 경쟁력 확보가 시급하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하며 로봇 시장에 정면 승부를 선언했다. 현대자동차는 보스턴다이내믹스를 통해 산업용 로봇과 휴머노이드 분야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LG전자가 소프트웨어·AI 역량에서 이들과의 격차를 얼마나 빠르게 좁히느냐가 관건이다.
국내 로봇 전문가들은 "모터와 구동계 기술은 LG전자의 실질적인 차별점이 맞지만, 로봇 지능을 구현하는 엣지 AI와 멀티모달 학습 역량을 동시에 갖추지 않으면 플랫폼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체 AI 모델 개발이나 선도적 AI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수적이라는 진단이다.
해외 사례가 주는 교훈
제조업 강자가 로봇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낸 해외 사례는 LG전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 야스카와전기는 서보모터 세계 1위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 독일 지멘스는 자동화 설비 역량을 토대로 스마트팩토리 로봇 플랫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두 기업 모두 기존 제조 역량을 로봇에 이식하되, 소프트웨어 파트너십으로 약점을 보완하는 전략을 택했다.
반면 하드웨어 역량만 믿고 소프트웨어 투자에 뒤처진 일부 전통 기업들은 빠르게 시장 주도권을 빼앗겼다. 이는 LG전자가 하드웨어와 AI 소프트웨어의 균형 잡힌 투자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는 점을 방증한다.
전망과 시사점
LG전자의 피지컬AI 전략은 수십 년간 쌓아온 제조 DNA를 첨단 기술과 접목하려는 도전이다. 모터·구동계 내재화라는 구조적 강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이 강점이 시장 경쟁력으로 현실화되려면 AI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와 생태계 구축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정부도 로봇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2030년까지 4조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만큼, 정책 환경은 우호적이다. LG전자가 가전·전장에서의 제조 역량을 로봇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면, 침체된 가전 사업의 돌파구를 마련함과 동시에 글로벌 피지컬AI 시장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다. 반대로 이 전환에 실패할 경우, 경쟁이 가속화되는 로봇 시장에서 만년 2등 혹은 부품 공급자로 머무를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LG전자의 승부수가 '게임 체인저'가 될지, 아니면 또 다른 시행착오로 남을지, 향후 2~3년의 행보가 결정적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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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은 반도체 회사만 찾지 않았다. LG·네이버·현대차를 찾은 것은 로봇·AI 클라우드·자율주행까지, 협력 범위가 공급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