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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컬 AI

반도체 너머의 서울

젠슨 황은 반도체 회사만 찾지 않았다. LG·네이버·현대차를 찾은 것은 로봇·AI 클라우드·자율주행까지, 협력 범위가 공급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반도체 너머의 서울

젠슨 황이 LG, 네이버, 현대차를 찾은 것은 HBM 때문이 아니었다

이 기사의 핵심 3줄

- 젠슨 황은 반도체 회사만 찾지 않았다. 로봇·AI 클라우드·자율주행·제조까지, 협력 범위가 공급망을 넘어섰다. - LG는 전 세계 로봇 특허 1위 기업이다. 시장은 이 사실을 젠슨 황이 방문하기 전까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 네이버는 엔비디아와 초대형 AI 클라우드를 함께 짓겠다고 선언했다. 한국에 'AI 팩토리'가 생긴다.

젠슨 황의 서울 일정표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반도체 회사를 방문하는 데 이틀을 썼고, 나머지 이틀은 로봇을 만드는 회사, 검색 엔진을 운영하는 회사, 자동차를 파는 회사에 할애했다. 공급망 조율이 목적이었다면 삼성과 SK하이닉스만 만나도 충분했다. 그러나 황 CEO는 LG트윈타워로, 서울대 AI연구소로, 네이버 본사로, 현대차 서초 사옥으로 종횡무진 이동했다. 방한 마지막 날 밤에는 이 모든 기업을 신라호텔 영빈관에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가 서울에서 찾은 것은 HBM만이 아니었다.

LG: 조용한 로봇 강자의 등장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젠슨 황 CEO의 만남은 이번이 공식적으로 처음이었다. 그러나 준비는 훨씬 전부터 이뤄졌다. 황 CEO의 차녀 매디슨 황 엔비디아 옴니버스·로보틱스 마케팅 수석이사가 지난 4월 이미 한국을 방문해 류재철 LG전자 사장과 피지컬 AI 협력을 논의했다. 아버지가 오기 전에 딸이 먼저 다녀간 셈이다. 엔비디아 가족 경영의 단면이기도 하고, 이번 협력이 즉흥적 방문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업계가 주목하는 것은 LG의 로봇 특허 역량이다. LG는 전 세계 AI 기반 로봇 특허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은 그동안 이 사실에 충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LG전자 주가는 오랫동안 가전 기업이라는 틀 안에 갇혀 저평가받아왔다. 선행 PER 6.8배는 삼성전자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젠슨 황의 방문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LG이노텍이 50.8%, LG CNS가 28%, LG디스플레이가 23.6%, 지주사 LG가 19.6% 급등했다. 하루아침에 수십 조 원의 시가총액이 더해진 것이다. 시장이 뒤늦게 발견한 것을 황 CEO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협력의 내용은 구체적이다. LG전자의 홈 휴머노이드 로봇 CLOiD와 엔비디아 Isaac 소프트웨어의 결합, 엔비디아 옴니버스 기반 디지털 트윈 구축, AI 데이터센터 냉각솔루션 협력이 주요 의제로 올랐다. LG그룹의 강점은 단품이 아니라 패키지다. 로봇의 몸통은 LG전자, 눈과 귀는 LG이노텍의 센서, 전원은 LG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두뇌는 엔비디아의 Isaac. 그룹 내부에서 로봇 한 대를 완성할 수 있는 수직 통합 구조가 황 CEO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네이버: AI 클라우드의 새 거점

네이버와의 협력에서 황 CEO는 "함께 초대형 AI 클라우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는 세종 데이터센터를 거점으로 엔비디아와 'AI 팩토리' 구축에 나선다. AI 팩토리는 단순한 서버 농장이 아니다. 엔비디아의 최신 GPU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대규모 AI 모델을 학습·추론하는 산업용 AI 인프라다.

네이버는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한국어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아시아 비영어권 AI 생태계에 교두보가 필요하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세계 최고 성능의 AI 칩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 협력의 셈법은 단순하다. 6월 9일 교보·대신·키움 등 주요 증권사들이 일제히 네이버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한 것도 이 맥락에서였다.

현대차: 새만금이 'AI 밸리'가 된다

황 CEO는 현대차가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새만금을 'AI 밸리'라고 불렀다. 외국 CEO가 한국의 특정 지역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흔치 않다. 현대차와의 협력 축은 자율주행과 AI 인프라다. 황 CEO는 현대차 서초 본사를 직접 방문해 정의선 회장을 만났고, 방한 마지막 밤 리셉션에도 현대차를 초대했다.

현대차는 이미 보스턴다이나믹스를 통해 로봇 사업에 발을 담갔다. 엔비디아의 Isaac 플랫폼과 현대차의 제조 역량, 보스턴다이나믹스의 로봇 기술이 결합할 경우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 강력한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코리아 AI 에코시스템 리셉션'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마지막 행사에 현대차가 자리한 것은 그 가능성을 공식화한 자리였다.

황 CEO가 그리는 그림

이번 방한에서 황 CEO는 반도체 공급망을 넘어 AI 인프라, 자율주행, 로봇, 생성형 AI 서비스까지 협력 범위를 확장하려는 엔비디아의 구상을 한국 기업들과 나눴다. 이것은 엔비디아가 단순한 칩 제조사에서 AI 생태계의 설계자로 변신하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데이터센터 안에서만 쓰이던 GPU가 공장으로, 자동차로, 가정용 로봇으로 확산되는 시대—황 CEO는 그 생태계의 핵심 인프라를 한국 기업들과 함께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반도체는 이미 한국의 강점이었다. 황 CEO가 이번에 확인한 것은 그 위의 층위, 즉 로봇·AI 인프라·자율주행에서도 한국이 무시할 수 없는 플레이어라는 사실이다. LG는 로봇 특허 1위 기업이었고, 네이버는 한국어 AI 데이터의 허브였으며, 현대차는 제조와 이동 수단을 동시에 쥔 기업이었다. 시장이 이들을 '반도체 수혜주'의 그늘에 가려진 기업으로 봐왔다면, 이제는 다시 볼 이유가 생겼다.

삼겹살집에서 시작된 대화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황 CEO가 서울을 떠나며 남긴 'AI 밸리'라는 단어는, 그가 한국을 단순한 공급처가 아닌 AI 시대의 파트너로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주목할 것: LG전자 CLOiD 휴머노이드 로봇의 2026년 상반기 개념 검증(PoC) 완료 여부, 그리고 네이버 세종 AI 팩토리의 구체적 GPU 투자 규모 발표.

기업 | 협력 분야 | 핵심 자산 | 시장 반응

LG | 피지컬 AI·로봇·디지털 트윈·데이터센터 냉각 | 로봇 특허 세계 1위, 수직계열화 | LG이노텍 +50.8%, LG CNS +28%

네이버 | AI 팩토리·초대형 AI 클라우드 | 한국어 데이터 최다 보유 | 목표주가 일제 상향

현대차 | 자율주행·AI 인프라·새만금 AI 밸리 | 보스턴다이나믹스·제조 역량 | 'AI 밸리' 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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