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공정은 지금, 전공정은 내년 — 반도체 장비주 온도차 해부
HBM 슈퍼사이클의 과실은 장비 업체에도 떨어지고 있다. 다만 수도꼭지가 열리는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 - 반도체 장비주가 일제히 급등했지만 실적은 제각각이다. 후공정 장비는 이미 수주가 살아나고 있고, 전공정 장비는 주가만 먼저 달렸다.
브로드컴 실적 가이던스 하나에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하루 만에 10% 폭락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와 노무라는 슈퍼사이클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진단한다. 누가 맞는가.

브로드컴 하나가 흔든 시장, 그러나 골드만삭스와 노무라는 왜 웃고 있나
- 브로드컴 실적 가이던스 하나에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가 하루 만에 10% 넘게 폭락했다.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 그러나 증권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유지했다. 피크아웃이 아니라 '공급 재분배'라는 이유에서다. - 골드만삭스와 노무라는 AI 설비투자가 1조 달러를 향해 간다고 진단했다. 슈퍼사이클은 이제 막 시작됐다고.
주식시장에는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한 기업의 실적 발표 하나가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것이다. 이번 주 그 역할을 한 것은 브로드컴이었다. 브로드컴이 2분기 실적 가이던스를 발표하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는 하루 만에 10.26% 폭락했다. 삼성전자의 선행 지표 격인 마이크론은 같은 날 13.25% 하락했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 논의가 순식간에 '피크아웃(정점 통과)' 논쟁으로 뒤바뀌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증권가는 흔들리지 않았다.
브로드컴 쇼크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시장이 두려워한 것은 실적이 아니었다. 브로드컴의 분기 실적 자체는 예상치를 웃돌았다.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마진 압박, 다른 하나는 구글이 브로드컴 의존 구조에서 벗어나 미디어텍을 새 파트너로 확보하고 자체 칩 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빅테크 고객사들이 특정 공급업체에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에서 탈피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의 해석은 달랐다. 엔비디아 베라루빈 서버에서 SOCAMM2 채용량이 줄었다는 우려가 수요 하락으로 해석됐지만, 이는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메모리 공급이 부족해 사양을 재배분한 것이라는 설명이 나왔다. 공급이 딸려서 줄인 것이지, 필요가 없어서 줄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피크아웃론과 슈퍼사이클론을 가르는 핵심이다.
이 논쟁에서 슈퍼사이클론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숫자다. 골드만삭스는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내년 AI 설비투자가 월가 컨센서스인 9,200억 달러를 크게 웃도는 1조 1,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노무라도 서울 미디어 브리핑에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초입 단계라고 진단했다. BOCOM 인터내셔널은 글로벌 메모리 산업이 금세기 최대의 업사이클에 진입했으며 가격 강세가 최소 2027년 1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씨티는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170만 원에서 310만 원으로 상향하며 2026년 4분기 HBM4 가격이 전분기 대비 30%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숫자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AI 인프라 투자가 이제 막 본궤도에 올랐다는 것이다.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칩을 설계하고 검증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지금 발주되는 AI 서버는 내년에 납품되고, 내년에 설계된 칩은 그 다음 해에 양산된다. 슈퍼사이클론자들이 보는 것은 오늘의 주가가 아니라 이 수요 파이프라인의 깊이다.
낙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구조적 위험도 실재한다. 모닝스타는 AI 열풍이 반도체 산업 특유의 붐-버스트 사이클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범용 D램 가격 상승세가 멈춘 것도 사실이다. 중동 분쟁으로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헬륨 공급망 차질 우려도 고개를 들었다. 한국은 카타르산 헬륨 의존도가 60~80%에 달한다.
빅테크의 공급망 다변화 전략도 변수다. 구글이 브로드컴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빅테크들은 특정 공급업체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이 한국 반도체에 기회가 될 수도,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시장의 단기 패닉과 구조적 업황은 다른 이야기다. 반도체 주가는 이번 주 브로드컴 쇼크 이후 급락했다가 다시 반등하며 '오락가락' 장세를 연출했다. 그러나 증권가가 목표주가를 유지한 데는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 1분기 영업이익 756% 급증, SK하이닉스의 HBM 점유율 확대, 엔비디아의 베라루빈 본격 양산—이 사실들은 브로드컴 가이던스 하나로 바뀌지 않는다.
진짜 질문은 피크아웃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슈퍼사이클이 얼마나 깊고 얼마나 길 것인가, 그리고 삼성과 SK하이닉스가 그 사이클에서 얼마만큼의 몫을 가져갈 것인가다. 후자의 답은 HBM4E 수율, 파운드리 흑자 전환, 그리고 엔비디아와의 협력 심도에 달려 있다.
주목할 것: 7월 예정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2분기 실적 발표. HBM4 판매 비중과 평균 판가(ASP) 상승폭이 슈퍼사이클의 실체를 판단하는 리트머스가 될 것이다.
구분 | 피크아웃론 | 슈퍼사이클론
근거 | 브로드컴 마진 압박, 범용 D램 가격 정체, 빅테크 공급망 다변화 | 골드만삭스 AI 설비투자 1조 달러 전망, HBM4 공급 부족, 엔비디아 베라루빈 양산
주요 기관 | 모닝스타 | 골드만삭스·노무라·BOCOM·씨티
한국 영향 | 단기 주가 변동성 확대 | 삼성·SK 목표주가 유지·상향
핵심 변수 | 빅테크 자체 칩 개발 속도 | HBM4E 수율·파운드리 협력 심도

HBM 슈퍼사이클의 과실은 장비 업체에도 떨어지고 있다. 다만 수도꼭지가 열리는 속도가 저마다 다르다 - 반도체 장비주가 일제히 급등했지만 실적은 제각각이다. 후공정 장비는 이미 수주가 살아나고 있고, 전공정 장비는 주가만 먼저 달렸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15일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라 광 인터커넥트 기술이 핵심 인프라로 부상하며, CPO(Co-Packaged Optics)·NPO(Near-Packaged Optics) 시장이 2030년까지 390억 달러를 초과할 것으로 전망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4일간 서울을 누비며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HBM 및 파운드리 협력을 논의했다. 그가 원한 건 반도체였다. 더 정확히는, 세상 어디에서도 충분히 살 수 없는 반도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