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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2025년 2분기에만 미국 연방 로비 활동에 128만 달러(약 17억 원)를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규제 기조가 급격히 재편되는 시기에 맞춰 '트럼프 관심사'와 '친한파 네트워크'를 동시에 공략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계 이커머스 기업 쿠팡이 2025년 2분기에만 미국 연방 로비 활동에 128만 달러(약 17억 원)를 지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규제 기조가 급격히 재편되는 시기에 맞춰 '트럼프 관심사'와 '친한파 네트워크'를 동시에 공략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쿠팡이 글로벌 기업으로서 미국 정치 환경에 본격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128만 달러, 단기에 집중된 이례적 규모
미국 상원 로비 공시 데이터베이스(LDA·Lobbying Disclosure Act)에 따르면, 쿠팡은 2025년 2분기 단 석 달 동안 128만 달러의 로비 비용을 지출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500만 달러를 웃도는 수준으로, 이는 한국 기업 가운데 단일 분기 기준으로는 이례적으로 높은 금액이다. 비교 대상으로,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연간 지출하는 로비 자금이 통상 200만~300만 달러 수준임을 감안하면 쿠팡의 이번 투자 강도가 얼마나 공격적인지 가늠할 수 있다.
쿠팡이 고용한 로비스트 집단은 단순한 무역 전문가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주요 직책을 맡았던 전직 관료, 공화당 핵심 의원실 출신 보좌관, 그리고 한미 관계에 정통한 이른바 '친한파(Korea hands)' 인맥이 망라된 것으로 전해진다. 로비 대상 의제는 전자상거래 관세 정책, 소비자보호 규제, 디지털 무역 협정, 그리고 미국 내 물류 인프라 투자 관련 입법 등 다층적이다.
왜 지금인가: 트럼프 2기의 통상 환경 급변
쿠팡이 로비 자금을 급격히 늘린 배경에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통상 정책 불확실성이 자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들어 중국산 상품에 최고 14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강제하고 있다. 쿠팡의 경우 한국과 미국을 잇는 직구(직접 구매) 물류 사업을 확장 중인 데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파페치(Farfetch) 등 패션 플랫폼 통합 전략을 추진하면서 미국 무역 규정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가 있다.
특히 미국이 '소액 면세(de minimis)' 규정—800달러 이하 물품에 대한 관세 면제—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추진하면서, 아시아발 저가 상품을 주력으로 취급하는 플랫폼들은 비용 구조의 근본적 변화에 직면했다. 이 규정의 변화는 테무(Temu), 쉬인(Shein)뿐 아니라 쿠팡 직구 모델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쿠팡 입장에서는 해당 규정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의회와 행정부에 자사의 입장을 반영시킬 골든타임이 2025년 상반기였던 셈이다.
'친한파' 네트워크: 한미 관계를 레버리지로
쿠팡 로비 전략에서 주목할 또 다른 축은 한미 외교 관계를 활용한 이른바 '친한파 네트워크' 공략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한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 반도체 보조금(CHIPS Act) 적용, 조선업 협력 등 여러 현안에서 미국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는 국면에서, 쿠팡은 '한국 대표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미국 정계에 어필하는 방식으로 로비의 정치적 정당성을 높이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쿠팡이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의원 및 보좌관 그룹 중 일부는 한미 의원 친선 그룹(Korea Caucus) 소속이거나, 인도·태평양 전략 소위원회 관련 인사들로 파악됐다. 이들을 통해 쿠팡은 단순한 기업 이익을 넘어 '한미 경제 동반자 관계 강화'라는 더 큰 서사를 내세울 수 있는 구도를 만든 셈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로비 관행과 비교하면
미국 로비 산업은 세계 최대 규모다. 비영리 감시기관 오픈시크릿(OpenSecrets)에 따르면, 2024년 미국 전체 로비 지출 규모는 약 44억 달러에 달했다. 아마존은 연간 2,000만 달러 이상, 알파벳(구글)은 1,000만 달러 이상을 로비에 쏟아붓는다. 쿠팡의 규모는 빅테크와 비교하면 아직 작지만, 아시아 이커머스 기업 가운데서는 두드러지게 적극적인 행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중국 바이트댄스(틱톡 모회사)는 미국 내 틱톡 금지 위기 국면에서 로비 자금을 2023년 800만 달러까지 끌어올렸지만 결국 법적·정치적 압박을 막아내지 못했다. 반면 대만 TSMC는 미국 정치권과의 관계를 공장 투자(애리조나 파운드리)라는 실물 경제 카드와 결합해 의회·행정부 쌍방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쿠팡의 전략은 틱톡의 방어적 로비보다는 TSMC식의 선제적·전략적 관계 구축에 더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
쿠팡의 미국 사업 확장과 로비의 연결 고리
쿠팡은 현재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사로서 사실상 글로벌 본사를 미국에 두고 있다. 창업자 김범석 의장은 미국 시민권자이며, 이사회와 주요 투자자 다수가 미국계다. 쿠팡은 2023년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하며 글로벌 패션 이커머스 시장에 진입했고, 대만과 일본에서도 로켓배송 모델 확장을 추진 중이다. 미국 시장 직접 진출 여부는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물류·유통 규제에 대한 민감도는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맥락에서 128만 달러 로비는 단순한 방어 비용이 아니라 향후 미국 사업 확장을 위한 정치적 인프라 투자로 읽힌다. 전자상거래 규제, 개인정보 보호법, 노동법(긱 이코노미 분류 문제) 등 쿠팡이 미국 시장에서 마주칠 제도적 장벽들을 미리 걷어내기 위한 선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사점: 한국 기업의 미국 로비 전략 전환점
전통적으로 한국 대기업들은 미국 로비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나 한국무역협회(KITA) 등 공공기관 채널에 의존해왔다. 개별 기업 차원의 직접 로비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등 일부 대기업에 국한됐다. 쿠팡이 이 반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한국 테크 기업들이 글로벌 정치 게임에 본격 참전했음을 상징한다.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2기처럼 규제 환경이 행정부 의지에 따라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로비는 선택이 아닌 생존 도구라고 입을 모은다. 한 통상법 전문가는 "미국 시장에서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거나 올리려는 기업이라면, 워싱턴 D.C.에서의 존재감은 곧 비즈니스 안전망"이라고 강조한다.
쿠팡의 공격적 로비 행보는 한국 테크 기업 전반에 하나의 기준점(benchmark)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 정치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개별 기업의 정치적 헤징(hedging) 필요성도 높아진다. 쿠팡이 이번 투자에서 어느 정도의 정책적 결실을 거두느냐에 따라, 네이버·카카오·크래프톤 등 미국 시장을 넘보는 한국 플랫폼 기업들의 워싱턴 전략 또한 재정립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