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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AI 비즈센터'를 도입하며 신규 브랜드의 입점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수십 년간 유지해온 백화점 입점 심사 관행에 디지털 전환을 본격 적용한 것으로, 유통업계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롯데백화점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AI 비즈센터'를 도입하며 신규 브랜드의 입점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수십 년간 유지해온 백화점 입점 심사 관행에 디지털 전환을 본격 적용한 것으로, 유통업계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AI가 대체하는 '입점 심사' 관행
전통적으로 백화점 입점은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브랜드 인지도, 매출 실적, 바이어 면담, 샘플 검토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했고, 최소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특히 중소 브랜드나 신생 브랜드의 경우 대형 유통사의 높은 진입 장벽으로 인해 사실상 입점 기회 자체가 봉쇄되는 구조적 불평등이 존재해왔다.
롯데백화점의 AI 비즈센터는 이 과정을 AI 기반 데이터 분석으로 대체한다. 브랜드의 온라인 판매 데이터, 소셜미디어 반응, 소비자 리뷰, 시장 트렌드 분석 등을 종합해 입점 가능성을 신속하게 판단하는 방식이다. 기존 바이어 중심의 주관적 심사에서 데이터 기반의 객관적 평가 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기회의 문 넓어진다" vs "AI 판단의 한계"
이번 도입에 대한 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신규 브랜드와 중소기업 측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백화점 입점을 위해 에이전시를 고용하거나 연줄에 의존해야 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데이터로 실력을 증명할 수 있는 환경이 열렸다는 평가다. 실제로 국내 소비재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오프라인 유통 진출의 병목이 해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유통 전문가들은 AI 알고리즘이 온라인 데이터를 중심으로 작동할 경우, 디지털 마케팅 역량이 부족한 전통 장인 브랜드나 지역 특산품 등이 오히려 더 불리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AI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하는 특성상, 검증되지 않은 혁신적 브랜드보다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외 선례에서 본 가능성과 위험
AI를 활용한 유통 입점 시스템은 해외에서 이미 선행 사례가 있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은 알고리즘 기반 셀러 심사를 오래전부터 운영해왔으며, 중국 알리바바 역시 티몰(Tmall) 입점 과정에서 AI 심사를 병행하고 있다. 이들 사례는 입점 효율화라는 긍정적 효과와 함께, 알고리즘 편향에 따른 특정 카테고리 쏠림 현상이라는 부작용도 동시에 보고하고 있다.
일본 이세탄 백화점의 경우 AI 분석을 보조 도구로만 활용하고 최종 결정은 전문 바이어가 내리는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했다. 이세탄 측은 "AI는 데이터를 보여주지만, 브랜드의 스토리와 철학은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유통업계 일각에서도 롯데백화점이 AI를 전면화할수록 이세탄식 하이브리드 모델에 대한 논의가 불가피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구조적 배경: 백화점 생존 전략
이번 AI 비즈센터 도입은 백화점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산업통상자원부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국내 백화점 업태의 성장세는 팬데믹 이후 온라인 쇼핑의 폭발적 확대로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다. 롯데백화점 역시 점포 효율화와 MD(상품기획) 혁신을 통해 경쟁력 회복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AI를 통해 신규 브랜드 발굴 속도를 높이면, MD 신선도를 유지하면서도 인력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AI 비즈센터는 단순한 업무 효율화가 아니라, 백화점이 데이터 기반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신호탄"이라고 분석했다.
향후 과제: 공정성·투명성 확보가 관건
AI 도입의 성패는 알고리즘의 공정성과 심사 기준의 투명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입점 탈락 기업이 "왜 거절당했는지"를 알 수 없다면, AI 심사는 기존 바이어 심사보다 오히려 더 불투명한 구조를 만들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미 플랫폼 알고리즘의 투명성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논의를 진행 중이며, 유통 분야 AI 심사도 이 논의의 사정권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롯데백화점이 AI 비즈센터를 단순한 홍보 이벤트가 아닌 실질적 혁신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심사 기준 공개, 이의신청 절차 마련, 정기적인 알고리즘 편향성 검토 등 제도적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AI가 유통의 문을 넓히는 도구가 될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장벽이 될지는 운영 방식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