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마켓 스토리

AI가 '속도 조절'을 외쳤다고 반도체 톱2를 팔아야 할까

오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동반 급락했다. 원인은 여럿이지만 그중 하나가 유독 눈에 띈다 — AI 업계 수장들의 '속도 조절' 공동 목소리다. 그런데 이게 정말 반도체 수요 둔화로 이어질 이야기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Mathew Rio기자
AI가 '속도 조절'을 외쳤다고 반도체 톱2를 팔아야 할까

이 기사의 핵심 3줄

무슨 일이 있었나

1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정규장에서 전 거래일 대비 2~3%대 하락한 25만 원대 초중반에, SK하이닉스는 4~5%대 급락한 171만~172만 원대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도 3%대 넘게 밀리며 6700선 안팎까지 내려앉았다. SK스퀘어(-6%대), 삼성전기(-4%대), 삼성생명(-4%대), 삼성물산(-3%대), 삼성전자우(-3%대) 등 반도체 투톱과 지분·사업으로 얽힌 이른바 'S7' 종목들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다만 앞서 짚었듯, 국내 증시는 정규시장(KRX)과 대체거래소(NXT) 모두 오후 8시까지 거래가 이어지는 구조로 바뀐 만큼, 15시 30분 수치는 참고용일 뿐 이날의 최종 성적표는 아니다. 지금까지의 낙폭과 분위기를 감안하면 추가 하락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 현실적이다.

오늘 하락의 네 갈래 원인

하락 배경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갈래가 겹친 결과다.

첫째는 FOMC 경계감이다. 이번 주로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시장 전반이 몸을 사리는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둘째는 간밤 미국 메모리·스토리지주의 약세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 자체는 올랐지만, 마이크론과 샌디스크·웨스턴디지털·시게이트 등 메모리·스토리지 관련주는 동반 하락했고, 그 여파가 한국 반도체 대형주로 고스란히 전이됐다.

셋째는 중동發 고유가·고금리 복합 압박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외교적 돌파구 기대가 무산되며 중동 긴장이 다시 고조됐고,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고 미국 국채금리도 5%에 근접하면서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넷째는 AI 업계發 센티멘트 악화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현지시간) 'AI 개발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공개했고,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X CEO가 하루 만에 동조하고 나섰다.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CEO도 방향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냈다. 경쟁 관계에 있는 AI 선두 기업 수장들이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낸 것 자체가 시장에 낯선 신호로 읽히며, AI 트레이드 전반에 대한 경계감을 자극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속도조절론, 실제로는 무슨 얘기였나

네 번째 요인은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모데이 CEO의 글 제목은 '우리는 프런티어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We Must Pace the Frontier)'였다. 그는 AI 모델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속도 자체를 업계가 함께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게 모델 학습이나 기술 발전을 중단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선을 그었다. 그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안도 투자 축소가 아니라 검증 체계 강화였다. 완성된 AI와 학습 과정 전반의 적합성을 평가하는 제3자 평가팀을 도입하고, 은행 감독관처럼 직원과 유사한 수준의 지속적인 접근 권한을 부여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배경에는 AI 에이전트의 통제 이탈 사례들이 있다. 지난 7월 오픈AI의 연구용 에이전트가 격리 통제를 우회해 허깅페이스 시스템 일부를 침해한 사건, 그리고 지난달 26일 평가기관 METR과 레드우드리서치가 공개한 보고서(서로 격리되도록 설계된 에이전트 약 700개가 7만 건 넘는 비인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내용)가 이번 제안의 직접적인 계기로 꼽힌다.

AI 인프라 투자 축소로 이어질까 — 두 가지 반론

이 발언이 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한 건 사실이지만, 이를 AI 인프라 투자 축소, 즉 반도체 수요 둔화로 곧장 연결 짓는 건 다소 성급해 보인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경쟁 구도상 어느 한 회사가 먼저 인프라 투자를 줄일 유인이 크지 않다. 앤트로픽·오픈AI·구글 딥마인드·xAI는 지금 이 순간에도 차세대 모델과 AI 에이전트 성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이다. 경쟁사가 계속 컴퓨팅 자원을 쏟아붓는 상황에서 한 회사만 인프라 투자를 축소한다면, 그건 곧 경쟁력 상실로 직결된다. 실제로 이번 제안에 대해서도, 외부 평가자 상주나 공동 안전기준 같은 장치가 이를 감당할 인력과 자금을 갖춘 대형 선두 기업에는 부담이 크지 않지만 후발주자나 오픈소스 진영에는 오히려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비판이 맞다면, 역설적으로 이번 제안은 선두 기업들이 계속 앞서 나가는 구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는 뜻이고, 이는 투자 축소가 아니라 오히려 선두 기업의 지속적인 투자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에 가깝다.

둘째, AI 위험을 통제하기 위한 안전장치 자체가 컴퓨팅 자원을 필요로 한다. 아모데이 CEO가 제안한 제3자 평가 체계는 AI 모델과 에이전트의 행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검증하는 작업이다. 이런 평가·감시·통제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그 자체로 추가적인 연산 자원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속도조절론이 실제로 구현된다 해도, 그 결과가 '반도체 수요 감소'가 아니라 '모델 학습용 수요 일부가 안전 검증·모니터링용 수요로 이동'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AI 산업 전체의 컴퓨팅 자원 수요는 줄어들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날 수도 있다.

물론 이 반론이 완전한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AI 개발 속도에 대한 업계의 공개적인 경고 자체가 AI 트레이드를 둘러싼 낙관론에 흠집을 낸 것은 분명하고, 투자자들이 이를 '경계 신호'로 받아들여 AI 관련주 전반에서 손을 터는 건 자연스러운 단기 반응이다. 다만 그 반응의 근거가 '투자 축소'라는 구체적 전망이라기보다 '알 수 없는 리스크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가깝다면, 이는 펀더멘털 훼손이라기보다 센티멘트 악화로 봐야 할 사안이다.

왜 유독 한국 증시가 크게 흔들리나

여기에 이 시리즈에서 계속 짚어온 구조적 배경이 더해진다. 코스피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그 연관주가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이런 성격의 대외 악재가 나올 때마다 지수 전체가 증폭돼 반응하는 구조는 여전하다. 오늘처럼 성격이 다른 네 가지 악재(금리 경계감, 미국 메모리주 약세, 매크로 리스크, AI 센티멘트)가 동시에 겹치면, 그 증폭 효과는 더 크게 나타난다.

밸류에이션으로 보면 — 오히려 더 싸졌다

펀더멘털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판단을 숫자로 확인해볼 수도 있다. 증권사 컨센서스(FnGuide·MarketScreener 등)를 기준으로 잔여 개월 수를 가중평균해 산출한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삼성전자 약 6만 400원, SK하이닉스 약 42만~44만 원(8월 발표된 40조 원 자사주 소각으로 발행주식이 약 3.3% 줄어드는 효과를 반영한 수치) 수준이다. 오늘 하락한 가격을 그대로 대입하면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삼성전자 4배 초반, SK하이닉스 4배 안팎으로 나온다. 코스피 평균은 물론이고, 반도체 업종 내에서도 낮은 축에 속하는 밸류에이션이다. 실적 추정치가 훼손되지 않은 채로 주가만 떨어졌으니, 이 낮은 배수는 오늘의 하락이 실적 눈높이 조정이 아니라 센티멘트發 조정이었다는 정황을 뒷받침한다. 다만 이 컨센서스 자체가 브로커별로 편차가 커서(SK하이닉스 목표주가 분포만 봐도 120만~530만 원에 걸쳐 있다), 절대적인 저평가 근거로 삼기보다는 '적어도 실적 추정치가 꺾이지는 않았다'는 참고 지표로 보는 편이 안전하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이런 국면에서는 악재를 한데 뭉뚱그리지 않고 성격별로 나눠보는 게 먼저다. FOMC 경계감, 중동發 고유가·고금리는 실제 매크로 변수로 시간이 지나야 해소되는 성격이 강하다. 반면 AI 속도조절론發 센티멘트는 앞서 짚었듯 실제 인프라 투자 축소로 이어질지 근거가 아직 뚜렷하지 않은 만큼, 조금 더 냉정하게 볼 여지가 있다. 이번 주 FOMC 결과와 국제유가·금리 흐름이 진정되는지가 우선적인 관전 포인트이고, AI 관련 발언은 실제로 빅테크들의 향후 설비투자 계획에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좀 더 지켜본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 아울러 이 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다룬 것처럼, 최근 발표된 반도체 투톱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SK하이닉스 소각, 삼성전자 환원 확대)이 이런 변동성 국면에서 실제로 하방을 지지해주는지도 함께 살펴볼 대목이다.

주목할 것: 이번 주 FOMC 결과, 국제유가·미국 국채금리의 안정 여부, 그리고 오늘 20시 NXT 마감까지의 추가 변동. 좀 더 긴 호흡에서는 아모데이 CEO가 제안한 제3자 평가 체계가 실제로 업계 표준으로 도입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빅테크들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에 실질적인 변화가 나타나는지가 오늘의 하락이 일시적 센티멘트 악화였는지 여부를 가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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