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0원대 고환율에…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동력 꺾이나
원달러 환율이 1540원대를 넘나드는 고환율 상황이 이어지면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논의에도 먹구름이 끼고 있다.
"루나 때보다 더 춥다." 국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이 한마디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2022년 테라·루나 붕괴 당시 비트코인은 약 70% 급락하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루나 때보다 더 춥다." 국내 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이 한마디는 현재 가상자산 시장의 분위기를 압축한다. 2022년 테라·루나 붕괴 당시 비트코인은 약 70% 급락하며 시장 참여자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그러나 2025년 하반기에 접어든 현재, 시장 내부에서는 그때와 비교해도 체감 온도가 더 낮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단순한 가격 하락을 넘어 구조적 복합 악재들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시경제 역풍, 이번엔 도망갈 곳이 없다
과거 암호화폐 약세장은 대체로 단일 촉매—규제 충격, 해킹, 특정 코인 붕괴—에 의해 촉발됐다. 그러나 현재의 하락 국면은 다층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금리 기조가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위험자산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달러 강세와 채권 수익률 상승은 유동성을 전통 안전자산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2022년에는 제로금리 환경이 유지되던 초기 국면에서 루나 붕괴가 발생했지만, 지금은 긴축 통화정책이라는 구조적 역풍 아래에서 악재가 중첩되고 있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다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보고서에서 암호화폐 시장과 전통 금융시장 간 상관관계가 팬데믹 이전 대비 최대 4배 높아졌다고 밝혔다. 이는 비트코인이 더 이상 '전통 금융과 무관한 독립 자산'이 아님을 의미한다. 나스닥이 흔들리면 비트코인도 함께 흔들리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규제 불확실성의 장기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가상자산 업계 간 법적 공방은 해를 넘기며 이어지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이후 기관 자금 유입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실제 순유입 규모는 초기 낙관론을 밑돌았다. 유럽에서는 MiCA(암호자산시장규정) 시행이 본격화되면서 일부 중소형 거래소들이 시장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한국에서도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 거래소에 대한 규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국내 투자자 보호 장치가 강화된 측면은 긍정적이지만, 동시에 신규 투자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거래량이 줄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비트·빗썸 등 국내 주요 거래소의 일평균 거래량은 2021년 최고점 대비 60% 이상 감소한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루나 붕괴와의 결정적 차이: '신뢰 자산'마저 흔들린다
2022년 루나 사태의 본질은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이라는 특정 실험의 실패였다. 당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피해는 입었지만 '기축 자산'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됐다. 반면 현재는 비트코인 자체에 대한 내러티브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디지털 금'이라는 서사는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 비트코인이 제자리를 맴도는 국면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블록체인 분석업체 체이널리시스에 따르면, 장기 보유자(LTH·1년 이상 보유)의 매도 압력이 최근 수개월 새 눈에 띄게 증가했다. 흔히 '다이아몬드 핸드'로 불리는 이들의 이탈은 시장 내 마지막 버팀목이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채굴자들의 항복(Miner Capitulation) 지표 역시 경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반감기(Halving) 이후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전기료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한 소규모 채굴업체들이 보유 코인을 시장에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마운트곡스 상환이라는 구조적 공급 폭탄
2014년 파산한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의 채권자 상환이 본격화되면서 약 14만 2,000개의 비트코인이 시장에 유입될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현재 비트코인 가격 기준으로 약 수십조 원에 달하는 물량이다. 채권자 대부분이 10년 이상 기다린 만큼 차익 실현 욕구가 강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루나 사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공급 압력 변수다.
여기에 각국 정부가 압수한 비트코인의 매각 가능성도 상시적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다. 미국 법무부가 보유한 실크로드 관련 비트코인과 독일 정부의 압수 물량 처분 이력은 시장 참여자들의 학습된 공포로 자리잡았다.
해외 비교: 일본과 미국의 약세장 탈출 전략
일본은 2018년 코인체크 해킹 사태 이후 강력한 규제와 투자자 보호 체계를 구축했다. 단기적으로 시장이 위축됐지만 제도화된 틀 안에서 기관 투자자의 점진적 진입이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시장의 복원력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경우 ETF 승인을 통해 전통 금융과의 연결 통로를 만들었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통 시장의 충격을 암호화폐 시장으로 더 빠르게 전달하는 역설을 낳았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NUS) 비즈니스스쿨의 연구에 따르면, 규제 명확성이 확보된 국가의 암호화폐 시장은 그렇지 않은 국가 대비 변동성이 평균 23% 낮았다. 이는 규제가 단기적 장애물이 아니라 장기적 안정성의 기반임을 시사한다.
시장 내 온도차: 절망과 기대의 공존
비관론과 낙관론은 극명하게 갈린다. 비관론자들은 비트코인이 기술적 지지선을 연달아 하향 이탈하고 있으며, 온체인 데이터상 새로운 매수 주체가 충분히 유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머크 리서치의 애널리스트 알렉스 쾨프는 "현재 시장은 가격 하락 자체보다 하락을 버텨줄 신규 수요의 부재가 더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반면 낙관론자들은 역설적으로 현재의 공포 지수가 기회의 신호라고 해석한다. 크립토 공포·탐욕 지수(Crypto Fear & Greed Index)가 '극단적 공포' 구간에 진입할 때마다 역사적으로 중장기 매수 기회가 열렸다는 통계적 근거를 제시한다. 아크 인베스트먼트의 캐시 우드는 비트코인의 장기 목표가치 논리가 훼손된 것이 아니라 단기 노이즈가 과도하게 반영된 것이라는 시각을 고수하고 있다.
전망과 시사점: 구조 재편의 진통
현재의 약세장은 단순한 사이클의 하강 국면이 아니라 암호화폐 시장이 성숙 금융시장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치르는 구조 재편의 진통일 수 있다. 기관 투자자의 참여 확대, 규제 체계의 정착, 채굴 산업의 효율화는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체질을 바꿀 변수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투기적 개인 투자자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크기는 이전 사이클보다 클 수 있다.
한국 금융당국과 업계에 대한 시사점도 분명하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활성화라는 두 목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느냐가 향후 국내 가상자산 생태계의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다. '루나 때보다 더 춥다'는 체감이 공허한 과장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신호라면,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은 단기 등락에 대한 민감성이 아니라 시장의 본질적 변화를 읽는 깊은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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