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나를 의심해도 나홍진은 의심 안 한다

보고 나서 의심하고, 의심하다가 다시 보게 되는 영화

Odin Park기자
나를 의심해도 나홍진은 의심 안 한다

《곡성》리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무언가에 속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속임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이로웠다. 나홍진이 만든 함정에 빠진 것이 분했지만, 그 함정이 너무나 정교해서 오히려 감탄이 나왔다.

《곡성》은 의심에 관한 영화다. 더 정확하게는, 의심이 어떻게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지에 관한 영화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마을에 나타난 일본인 이방인(쿠니무라 준)을 의심한다. 무명(천우희)이 나타나 경고를 던진다. 일광(황정민)이 나타나 굿을 한다. 종구는 믿어야 할 것과 의심해야 할 것을 끝내 구분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혼란이 딸 효진(김환희)을 앗아간다.

나홍진은 관객에게도 똑같은 함정을 놓는다. 이방인이 악마인가. 무명이 선한 존재인가. 일광은 무엇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종구와 함께 의심하고, 믿고, 다시 의심한다. 그러다 결말에 이르러 자신이 얼마나 철저하게 속았는지를 깨닫는다. 나홍진은 관객의 의심을 무기로 관객 자신을 찌른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또 다른 기둥이다. 곽도원은 무능하고 겁 많은 아버지를 연기하면서도 관객의 감정이입을 끌어낸다. 그의 공포는 연기처럼 보이지 않는다. 진짜 무서워하는 사람의 땀 냄새가 난다. 쿠니무라 준의 이방인은 말이 없고 움직임이 느리다. 그런데 그가 등장할 때마다 극장 안의 온도가 내려가는 것 같다. 흥미로운 건 쿠니무라 준 본인이 나홍진 감독에게 "역할명을 일본인이 아니라 외지인으로 해달라"고 직접 부탁했다는 사실이다. 국적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공포를 만들겠다는 배우의 의지가, 스크린에서 그대로 실현됐다. 황정민의 일광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캐릭터다. 코믹하다가 공포스럽고, 친근하다가 섬뜩하다. 황정민이 아니었다면 이 캐릭터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천우희. 그녀의 무명은 선인지 악인지조차 불분명하지만,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공기가 달라진다. 말보다 눈빛으로 연기하는 배우의 힘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건 김환희다. 당시 열 살의 아이가 빙의된 소녀를 연기한 방식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는다. 효진이 아버지를 향해 눈을 뒤집고 욕을 쏟아내는 장면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그 장면 앞에서는 연기라는 단어가 무색해진다.

156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전혀 길지 않다. 나홍진은 단 한 순간도 관객의 시선을 놓아주지 않는다. 비와 안개로 뒤덮인 곡성의 풍경은 불안을 시각화하고, 장영규의 음악은 공포를 청각화한다. 모든 것이 의심을 키우기 위해 설계됐다.

결말에 대한 해석은 지금도 분분하다. 나홍진은 답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영화의 결함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심하는 인간에게 명확한 답을 주는 것은 오히려 이 영화의 주제를 배반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의심은 답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의심은 더 깊은 의심으로 이어질 뿐이다. 그리고 그 끝에는 파멸이 있다.

나홍진을 의심하지 마라. 그가 놓은 함정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곡성》 앞에서 그런 자신감은 어리석음의 다른 이름이다.

★★★★★ (5.0/5.0)

한줄평
"의심이 무기가 되고, 믿음이 저주가 되는 영화. 나홍진은 관객 자신을 함정으로 끌어들인 뒤, 문을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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