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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e스포츠 '성지'로 탈바꿈하나

넥슨이 서울 잠실에 1만 1000석 규모의 실내 e스포츠 전용 경기장 운영에 나선다. 단순한 기업 투자를 넘어, 한국 e스포츠 산업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분기점으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Odin Park기자
잠실, e스포츠 '성지'로 탈바꿈하나

넥슨이 서울 잠실에 1만 1000석 규모의 실내 e스포츠 전용 경기장 운영에 나선다. 단순한 기업 투자를 넘어, 한국 e스포츠 산업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분기점으로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만 1000석, 숫자가 말하는 것

1만 1000석이라는 규모는 국내 e스포츠 경기장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현재 국내 최대 e스포츠 전용 시설로 꼽히는 종로구 소재 'LoL 파크'의 수용 인원이 약 400석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시설은 사실상 차원이 다른 인프라다. 규모로만 따지면 잠실실내체육관(약 1만 2000석)과 맞먹는 수준으로, e스포츠 경기를 오프라인 대형 스포츠 이벤트와 동급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국내 e스포츠 산업 규모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기준으로 2023년 약 1조 원대를 돌파했으며,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뉴주(Newzoo)는 세계 e스포츠 시장이 2025년 이후에도 연평균 10% 안팎의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이 시장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의 종목을 통해 글로벌 허브 역할을 해왔으나, 정작 대형 관람 인프라는 오랜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왜 잠실인가

입지 선정은 전략적이다. 잠실은 서울 동남권 교통의 요충지로, 지하철 2·8호선이 교차하며 수도권 광역 접근성이 뛰어나다. 잠실종합운동장 일대는 서울시의 '국제 스포츠·마이스(MICE) 복합단지' 개발 계획과도 맞닿아 있다. 서울시는 해당 지역을 2030년대를 목표로 스포츠·엔터테인먼트·컨벤션이 어우러진 복합 거점으로 재편하는 구상을 추진 중이며, 넥슨의 경기장 운영은 이 그림과 자연스럽게 맞물린다.

부동산 개발 측면에서도 주목할 지점이 있다. 대형 앵커 시설이 들어서면 주변 상권 활성화와 연계 소비 유발 효과가 뒤따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스테이플스 센터(현 크립토닷컴 아레나) 주변 상권이 NBA·NHL 시즌에 따라 유동 인구와 매출이 크게 출렁이는 사례는 대형 경기장의 지역 경제 파급력을 잘 보여준다.

글로벌 선례가 증명하는 가능성

해외에서는 이미 대규모 e스포츠 전용 아레나 모델이 안착 단계에 들어섰다. 미국 텍사스주 알링턴에 위치한 'Esports Stadium Arlington'은 약 2500석 규모임에도 세계 최대 e스포츠 전용 경기장으로 주목받았고, 중국은 상하이·청두 등 주요 도시에 5000석 이상급 시설을 속속 건립하며 e스포츠 관광 자원화에 앞서가고 있다. 한국의 1만 1000석 시설이 완공·운영될 경우, 단숨에 세계 최대급 e스포츠 전용 아레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이 같은 대형 시설은 국제 대회 유치에 결정적 레버리지로 작용한다. 라이엇게임즈의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블리자드의 오버워치 리그 파이널, 밸브의 더 인터내셔널 등 글로벌 메이저 대회들은 경기장 수용 규모와 인프라 수준을 개최지 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이 2012년 이후 롤드컵 결승을 유치하지 못한 배경 중 하나로 대형 전용 시설 부재가 거론돼 왔다는 점에서, 이번 경기장은 국제 대회 유치 경쟁력을 실질적으로 높일 수 있는 카드다.

넥슨의 셈법과 리스크

넥슨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사회공헌형 투자'가 아니다. 자사 IP(지식재산권) 기반 대회를 안정적으로 개최할 수 있는 전용 홈그라운드를 확보하는 동시에, 경기장 명명권(네이밍 라이츠) 수익, 광고·스폰서십, 굿즈 판매, 팬미팅·콘서트 등 복합 이벤트 수익까지 아우르는 '경기장 수익 모델'을 내재화하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미국 NBA·NFL 구단들이 경기장 자체를 수익 플랫폼으로 운영하는 방식과 유사한 접근이다.

다만 리스크도 상존한다. e스포츠 관람 문화가 온라인 스트리밍 중심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1만 1000석을 정기적으로 채울 수 있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내 e스포츠 현장 관람 인구는 코로나19 이후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아직 대형 야외 공연이나 전통 스포츠와 같은 수준의 오프라인 소비 습관이 형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운영 주체인 넥슨이 타사 게임 대회를 얼마나 개방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시설 운영의 중립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지도 업계의 관심사다.

e스포츠 생태계 전반에 미칠 파장

인프라의 질적 도약은 생태계 전반을 자극한다. 대형 경기장이 생기면 스폰서 기업들의 투자 매력도가 높아지고, 이는 다시 선수 처우 개선과 리그 운영 수준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다. 국내 e스포츠 선수들의 평균 연봉과 계약 안정성 문제는 오랜 숙제였다. 한국e스포츠협회(KeSPA) 역시 선수 표준계약서 도입 등을 통해 구조 개선을 시도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변화는 리그 수익성 향상이 전제돼야 한다.

지역 경제와 관광 측면에서도 파급력이 예상된다. 한국을 찾는 e스포츠 팬 관광객, 이른바 '게임 투어리즘'은 이미 일부 글로벌 대회 기간 동안 항공권·숙박 수요를 끌어올리는 현상이 확인된 바 있다. 1만 석 이상 규모의 상설 경기장이 자리를 잡으면, 잠실 일대가 게임 팬들의 정기적 방문 목적지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망: '성지'가 되려면

잠실이 진정한 e스포츠 성지로 자리매김하려면 하드웨어 이상의 소프트파워가 뒷받침돼야 한다. 경기장이 특정 기업의 홍보 공간으로 좁혀지는 순간 산업 전체의 거점이라는 상징성은 희석된다. 다양한 게임사, 다양한 장르의 대회가 열리는 '열린 플랫폼'으로 운영될 때 비로소 팬과 시장 모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서울시·문화체육관광부 등 공공 부문과의 협력 구조도 중요하다. 시설 접근성 개선, 관련 교육·체험 프로그램 연계, 국제 대회 유치 행정 지원 등 민관 협력이 맞물릴 때 인프라 투자의 효과는 배가된다. 1만 1000석의 좌석이 채워지는 날, 그 의미는 단순한 흥행 수치를 넘어 한국 e스포츠가 다음 단계로 도약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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