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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 연속 지재권 소송 패소…게임 IP 전쟁의 균열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의 '롬(ROM: Remember Of Musiverse)'을 상대로 제기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서 1심 패소 판결을 받았다.

Odin Park기자
엔씨소프트, 연속 지재권 소송 패소…게임 IP 전쟁의 균열

엔씨소프트가 카카오게임즈의 '롬(ROM: Remember Of Musiverse)'을 상대로 제기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에서 1심 패소 판결을 받았다. 앞서 '아키에이지워' 소송에서도 패소한 데 이어 연속으로 법적 공방에서 고배를 마시면서, 국내 게임 업계의 IP 보호 전략과 소송 남용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엔씨소프트의 연속 패소, 무엇이 문제였나

엔씨소프트는 '롬'이 자사의 대표 MMORPG인 '리니지' 시리즈의 게임 시스템, 세계관, UI(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을 무단으로 모방했다고 주장하며 카카오게임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엔씨소프트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게임의 장르적 특성상 공통적으로 활용되는 시스템과 규칙은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앞서 크래프톤의 '아키에이지워' 소송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된 법리다. 당시 재판부 역시 "게임의 규칙이나 진행 방식, 기본 시스템 자체는 아이디어에 해당해 저작권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두 소송의 패소는 엔씨소프트의 IP 보호 전략이 법적으로 한계에 부딪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된다.

게임 저작권의 '아이디어-표현 이분법'

게임 저작권 분쟁의 핵심 쟁점은 이른바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이다. 저작권법은 아이디어 자체는 보호하지 않고, 그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결과물만을 보호한다. MMORPG 장르에서 캐릭터 육성 시스템, 전투 방식, 성장 트리 구조 등은 장르 관습으로 굳어진 요소로, 법원은 이를 특정 기업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IT·지식재산권 전공 연구에 따르면, 국내 게임 저작권 소송에서 원고 승소율은 전체 소송의 30%를 밑도는 수준이다. 게임 개발의 특성상 유사 장르 내 공통 요소가 방대하고, 실질적 유사성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게임사들이 자사 IP를 보호하고자 소송을 제기하지만, 법원이 인정하는 보호 범위는 생각보다 매우 좁다"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 왜 소송 전략에 의존하나

엔씨소프트의 잇따른 소송 제기는 회사의 경영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한때 국내 게임 시장을 호령하던 리니지 IP는 최근 수년간 모바일 MMORPG 시장의 과포화, 신규 이용자 유입 감소, 대형 신작 부재 등으로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2023년과 2024년 엔씨소프트의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으며, 이 과정에서 리니지 유사 게임들이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는 내부 위기감이 고조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소송은 후발 경쟁사들에 대한 시장 견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소송 제기만으로도 상대방의 마케팅·서비스 비용을 증가시키고, 투자자 불안을 야기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실질적 승소 여부와 무관하게 경쟁사를 압박하는 소송 전략"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카카오게임즈 '롬', 시장에서의 위치

카카오게임즈가 퍼블리싱한 '롬'은 원더피플이 개발한 모바일 MMORPG로, 리니지M·리니지W와 동일한 장르 공략을 표방하며 출시된 게임이다. '리니지라이크'라고 불리는 이 장르는 특정 전투 방식과 PK(플레이어 간 전투) 시스템, 혈맹(길드) 중심의 커뮤니티 구조를 공유한다. 시장에는 '오딘: 발할라 라이징', '뮤 모나크', '제2의 나라' 등 유사 장르 게임이 이미 다수 자리 잡고 있어, 법원도 장르 전반의 공통성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 측은 이번 1심 판결에 대해 "게임의 독립성과 창작성을 인정받은 결과"라고 환영하는 입장이다. 반면 엔씨소프트는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사례: 게임 저작권 소송의 국제적 흐름

게임 IP 분쟁은 해외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미국에서는 에픽게임즈의 '포트나이트'가 여러 건의 모방 소송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으며, '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펍지도 '포트나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취하한 바 있다. 일본에서는 닌텐도가 '포켓몬' 관련 모방 게임에 대해 강경 대응으로 일관해 실질적 성과를 거뒀지만, 이는 캐릭터 디자인과 상표권이 명확히 결합된 경우다.

공통적으로 각국 법원은 게임 장르의 시스템적 유사성보다 시각적·청각적 표현의 직접 복제 여부에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추세다. 즉, '같은 방식으로 만든 게임'과 '복제한 게임' 사이의 경계를 법원은 상당히 넓게 설정하고 있다.

'리니지라이크' 장르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엔씨소프트 스스로가 '리니지라이크' 장르의 설계자로서 이 장르를 산업적 표준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소송의 딜레마를 심화시킨다. 장르가 확산될수록 해당 시스템 요소들은 '표현'이 아닌 '관습'으로 굳어지고, 그 순간 저작권 보호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게 된다.

게임 산업 분석가들은 "엔씨소프트가 리니지 장르를 대중화함으로써 오히려 경쟁자들이 법적 위험 없이 유사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토양을 닦았다"고 지적한다. 이는 혁신을 통한 차별화 없이는 법적 보호만으로 시장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전망과 시사점

엔씨소프트가 항소를 선택하더라도 법리적 흐름을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장기적으로 이번 연속 패소는 엔씨소프트의 IP 보호 전략이 소송보다 혁신적 콘텐츠 개발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게임 업계 전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원이 장르 공통 요소에 대한 저작권 보호를 거듭 부정하는 상황에서, 후발 게임사들은 소송 리스크를 낮게 평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시장 경쟁을 더욱 격화시키는 동시에, 선발 기업들이 특허·영업비밀·상표권 등 저작권 이외의 다양한 법적 수단으로 IP 보호 전략을 다각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겨준다.

결국 이번 판결은 단순한 소송 결과를 넘어, 한국 게임 산업에서 IP 보호의 실효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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