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씨소프트, 신작 공백 끝… '아이온2' 하나로 영업이익 775% 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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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의 한 특급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특정 아이돌 그룹의 앨범 재킷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프런트 직원은 해당 그룹의 굿즈를 착용하고 있다. 객실에는 포토카드와 친필 사인이 담긴 웰컴 키트가 놓여 있다.

서울 용산구의 한 특급호텔 로비에 들어서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특정 아이돌 그룹의 앨범 재킷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프런트 직원은 해당 그룹의 굿즈를 착용하고 있다. 객실에는 포토카드와 친필 사인이 담긴 웰컴 키트가 놓여 있다. K팝 팬덤을 겨냥한 '팬덤 호텔 패키지'가 한국 숙박 산업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3년 방한 외국인 관광객 1,103만 명 가운데 K팝·한류 콘텐츠를 주요 방문 동기로 꼽은 비율은 전체의 약 32.4%에 달했다. 2019년 동일 조사 대비 약 8%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특히 20~30대 여성 관광객 비중이 높은 동남아시아, 일본, 북미 권역에서 이 비율은 40%를 웃돌았다. 팬덤 소비는 더 이상 음반·공연 산업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수치가 입증하고 있다.
■ 호텔업계, 팬덤 경제에 뛰어들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특급호텔 가운데 K팝 아티스트와의 공식 협업 패키지를 운영한 곳은 2021년 5개소에서 2024년 기준 30개소 이상으로 늘었다. 롯데호텔은 하이브 산하 아티스트와 연계한 '아티스트 스테이' 패키지를 출시해 예약 개시 72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SM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특정 그룹의 콘서트 기간에 맞춰 전용 패키지를 선보였으며, 해당 기간 외국인 투숙 비율이 평소 대비 21%포인트 높아졌다고 공개했다.
패키지 구성도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 단순한 굿즈 증정을 넘어 아티스트가 실제 머문 객실을 재현한 '레플리카 룸', 팬 미팅 참가권과 숙박을 결합한 번들 상품, 아티스트의 식습관을 반영한 '셀럽 다이닝' 메뉴까지 등장했다. 일부 호텔은 AI 챗봇을 활용해 아티스트의 언어 패턴을 모사한 '팬덤 컨시어지' 서비스를 시범 운영 중이다.
■ 팬덤 관광의 경제적 파급력
팬덤 관광객은 일반 관광객보다 씀씀이가 크다는 점에서 호텔업계의 구애가 이어진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K팝 팬덤 목적 방한 관광객의 1인당 평균 지출액은 약 236만 원으로, 일반 관광 목적 방문자(약 148만 원) 대비 59.5% 높았다. 숙박비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져, 팬덤 관광객은 4성급 이상 호텔 선택 비율이 61%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 평균(38%)을 크게 상회했다.
호텔업계 관계자는 "팬덤 관광객은 콘서트·팬 미팅 일정에 맞춰 이미 방문 시기와 체류 기간이 고정돼 있어 타깃 마케팅 효율이 높다"며 "충성도 높은 소비 집단을 상대적으로 적은 마케팅 비용으로 유치할 수 있다는 점이 협업 확대의 핵심 동인"이라고 설명했다.
■ 엔터사-호텔의 윈윈 구조
기획사 입장에서도 이 협업은 매력적이다. 호텔이라는 고급 플랫폼은 아티스트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는 동시에, 숙박 패키지 판매 수익의 일부를 로열티 형태로 수취할 수 있다.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하이브 모두 2023~2024년 사업보고서에서 '라이선싱 및 브랜드 협업'을 신규 수익원으로 명시했다.
하이브의 경우 2023년 라이선싱 관련 매출이 전년 대비 약 38% 성장했으며, 숙박·F&B 부문 협업이 그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문화 산업 전문가인 이화여대 미디어학부 이지행 교수는 "K팝 기획사가 음악 IP를 활용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는 전략은 디즈니가 테마파크·호텔로 IP를 수익화한 방식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 해외 사례와의 비교
팬덤과 숙박 산업의 결합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일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성지순례형 관광'이 정착돼, 애니메이션·아이돌과 연계된 호텔 패키지가 연간 수천억 엔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도쿄의 '아이돌 협업 호텔'은 성수기 평균 객실 단가가 일반 동급 호텔 대비 40~60% 높게 책정됨에도 예약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Eras Tour'가 지나간 도시마다 호텔 평균 객실 요금이 최대 300% 급등하는 이른바 '스위프트 이코노미' 현상이 관찰됐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필라델피아 지점은 스위프트의 공연이 해당 지역에 미친 직접 경제 효과를 약 수억 달러로 추산한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의 K팝-호텔 협업 모델은 이 같은 글로벌 팬덤 경제 흐름을 제도화·상시화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 그늘도 있다: 과열·진입 장벽·팬덤 피로감
그러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팬덤 패키지 가격은 일반 객실보다 평균 2~3배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아 '팬심을 이용한 가격 착취'라는 비판이 팬 커뮤니티 내에서 꾸준히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해 한 대형 호텔이 특정 그룹 협업 패키지를 1박 기준 100만 원 이상에 내놓자 SNS에서 '#팬덤착취'라는 해시태그가 확산되며 불매 움직임으로 이어진 바 있다.
또한 협업 아티스트의 사생활 침해 문제도 불거진다. '아티스트가 실제 머문 방'을 내세우는 마케팅이 아티스트의 동의 없이 이뤄지거나 위치 노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는 "아티스트의 퍼블리시티권 보호와 상업적 활용 사이의 법적 경계를 명확히 하는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공식 발표했다.
비수기 공백 문제도 구조적 약점으로 꼽힌다. 팬덤 패키지 수요는 콘서트·컴백 시즌에 집중되는 특성상, 아티스트 활동 공백기에는 수요가 급감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 정책과 산업의 과제
한국 정부는 2024년 '한류 연계 관광 활성화 방안'을 통해 K팝 팬덤 관광을 의료·쇼핑과 함께 3대 고부가가치 관광 유형으로 지정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호텔과 엔터테인먼트사 간 협업을 지원하는 전담 창구를 설치하고, 팬덤 관광 전용 비자 간소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문가들은 지속 가능성 확보를 위해 특정 아티스트 의존도를 낮추고 'K팝이라는 장르 자체'를 관광 자원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관광학 전문가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윤지환 교수는 "개별 아티스트의 인기 사이클에 종속되면 지속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며 "K팝 제작 현장 체험, 연습생 문화 체험 등 산업 전반을 콘텐츠화하는 '메타 팬덤 관광'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팝이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숙박·F&B·패션을 아우르는 복합 문화 경제권을 형성해가고 있다. 한류의 경제적 외연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그 실험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호텔 로비에서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