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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에 갇힌 홈쇼핑, 생존의 기로에 서다

한때 '유통 3강'으로 불리며 백화점·대형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TV 홈쇼핑 산업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모바일 커머스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급성장, 그리고 유료방송 시청자 이탈이 맞물리며 홈쇼핑 업계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Odin Park기자
TV에 갇힌 홈쇼핑, 생존의 기로에 서다

한때 '유통 3강'으로 불리며 백화점·대형마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던 TV 홈쇼핑 산업이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모바일 커머스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의 급성장, 그리고 유료방송 시청자 이탈이 맞물리며 홈쇼핑 업계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2010년대 중반과는 사뭇 달라진 풍경이다.

한때 '황금알 낳는 거위'였던 홈쇼핑

국내 TV 홈쇼핑 산업은 1995년 CJ홈쇼핑과 LG홈쇼핑(현 GS샵)의 동시 개국과 함께 본격화됐다. 이후 현대홈쇼핑, 롯데홈쇼핑, NS홈쇼핑 등이 잇따라 출범하면서 홈쇼핑은 2000년대와 2010년대에 걸쳐 백화점, 대형마트와 함께 국내 유통업계 '빅3'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2015년 무렵 TV 홈쇼핑 6개사의 합산 취급고는 약 17조 원에 달했고, 영업이익률 역시 10%를 웃돌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TV 홈쇼핑의 전체 유통 시장 내 비중은 2018년을 기점으로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온라인 쇼핑(모바일 포함) 비중은 빠르게 상승해 현재 전체 소매 시장의 절반을 훌쩍 넘겼다.

시청자는 떠났고, 송출수수료는 올랐다

홈쇼핑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시청 환경의 붕괴'다. 유료방송 가입자의 TV 시청 시간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특히 40대 이하 중·장년층의 이탈이 두드러진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1인당 TV 시청 시간은 2019년 이후 매년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으며, OTT 서비스 이용률은 반대로 급증하는 추세다.

설상가상으로 홈쇼핑 업계는 천문학적인 송출수수료 부담을 떠안고 있다.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 등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송출수수료는 홈쇼핑사 전체 합산 기준으로 연간 2조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홈쇼핑사의 경우 매출액 대비 송출수수료 비율이 20%를 넘어서기도 했다. 시청자가 줄어 매출은 정체되는데, 채널 자리를 지키기 위해 내는 '통행세'는 오히려 올라가는 기이한 구조가 굳어졌다.

한 홈쇼핑 업계 관계자는 "TV를 보는 사람이 줄어도 채널을 포기할 수 없으니 수수료 협상에서 항상 을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며 구조적 딜레마를 토로했다.

모바일·라이브커머스의 공습

홈쇼핑의 또 다른 위협은 외부에서 왔다. 네이버 쇼핑라이브, 카카오 쇼핑, 쿠팡 라이브 등 플랫폼 기반 라이브커머스는 TV 홈쇼핑의 핵심 경쟁력인 '실시간 판매 방송' 형식을 스마트폰으로 그대로 가져왔다. 진입장벽이 낮고, 인플루언서나 소규모 브랜드도 손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를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중국의 사례는 이 변화의 속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중국의 라이브커머스 시장은 2020년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해 전체 전자상거래의 약 20%를 차지하는 규모로 커졌으며, TV 홈쇼핑은 사실상 시장에서 존재감을 잃었다. 국내 역시 유사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유통업계 분석가인 A씨는 "TV 홈쇼핑의 강점이었던 '생방송+즉각 구매'의 공식은 라이브커머스가 훨씬 저렴하고 유연하게 구현하고 있다"며 "TV라는 플랫폼에 묶인 홈쇼핑은 구조적 경쟁 열위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한계도 뚜렷

홈쇼핑 업계도 손을 놓고 있지는 않다. 각사는 자체 앱과 모바일 라이브 채널을 강화하고, 단순 상품 판매를 넘어 여행·금융·헬스케어 등 서비스 상품으로 취급 품목을 다변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CJ온스타일은 '원플랫폼' 전략을 내세우며 TV, 모바일, T커머스를 통합 운영하는 방식으로 시너지를 꾀하고 있고, GS샵 역시 모바일 라이브 방송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기업 간 거래(B2B) 영역을 확장하거나, 데이터 기반 타깃 마케팅 역량을 외부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원을 다각화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TV 채널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여전히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시도가 근본적인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해외는 어떻게 대응했나

미국의 경우 QVC와 HSN을 운영하는 콰이어트미디어그룹이 일찌감치 스트리밍 플랫폼 투자와 소셜미디어 라이브 판매를 병행하며 돌파구를 모색했다. 그러나 미국 홈쇼핑 역시 2010년대 후반 이후 시청자 고령화와 온라인 유통의 공세에 고전하며 구조 조정을 거쳤다. 일본 홈쇼핑 시장 또한 야후·라쿠텐 등 이커머스 공룡의 성장 앞에서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축소되는 흐름을 보였다. 이처럼 TV 홈쇼핑의 쇠락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글로벌 공통 현상임이 분명하다.

구조조정과 규제 완화, 양날의 검

업계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송출수수료 산정 기준의 법제화와 정부 차원의 조정 기구 마련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송출수수료 규제 문제는 홈쇼핑사와 유료방송사 사이의 갈등 지점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으나, 뚜렷한 제도적 해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한편 일각에서는 홈쇼핑 채널 수를 인위적으로 줄이는 구조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6개에 달하는 TV 홈쇼핑 채널이 한정된 파이를 나눠 가지는 상황에서, 시장 규모에 걸맞은 업계 재편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사업자가 공멸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반면 소비자 단체 측에서는 채널 감소가 소비자 선택권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촉구하고 있다.

왕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TV 홈쇼핑은 30년 역사 속에서 대한민국 소비 문화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신선식품 새벽배송, 명품 특가 행사, 건강기능식품 대중화까지, 홈쇼핑이 유통 시장에 남긴 족적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플랫폼 패러다임이 TV에서 모바일로 완전히 전환된 지금, 과거의 성공 방정식이 미래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업계 전문가들은 홈쇼핑이 단순히 '방송에서 물건 파는 채널'이라는 정체성을 탈피해, 데이터와 콘텐츠 경쟁력을 핵심 자산으로 재정의하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송출수수료 부담 완화와 규제 혁신이라는 정책 과제와 함께, 플랫폼 전환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홈쇼핑은 '유통 3강'의 영광을 뒤로한 채 점점 좁아지는 생태적 지위에 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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